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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the record Aug 05. 2016

묘연

고양이 묘 猫      인연 연 緣





' 불쾌해 '




고양이가 까끌까끌한 혀로 내 손을 처음 핥아줬을 땐 그랬다.

강아지 밖에 키워 본 적이 없는 내겐 그랬다.

까끌까끌한 혀라니 ..




' 으르렁 거려.. 내가 싫은가 봐 '




정을 붙여보려고 쓰다듬었던 고양이가 내던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땐 그랬다.

강아지 밖에 키워 본 적이 없는 내겐 그랬다.

으르렁 거리다니 .. 쓰다듬어 주는데 ..


고등학생 때 내가 처음 만난 고양이는 그랬다.









 ' 윽.. 고양라니 '




동생이 울며 불며 고양이를 안고 집에 들어와 버렸다.

몰래 먹이를 주며 이뻐하던 길고양이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단다. 분명 그랬는데 똑같이 생긴 길고양이를 만났다며 데리고 왔다.




' 못생겼다 '




솔직히 동생이 데려온 길고양이는 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삐뚤어진 콧수염 같은 얼굴 무늬 때문에 심술 맞아 보였다. '못생겼다'라는 첫인상과 고등학교 시절 접한 고양이에 대한 느낌 때문에, 노발대발하면서 안된다는 부모님과 한편에 설 뻔했다.




하지만,



  猫  고양이 묘


   緣  인연 연



이라고 했던가?

그 말처럼 어른이 되어 나는 이 고양이와 인연을 맺기로 마음먹었다.








 ' 얘도 꼬리가 짧네..  '




동생이 데려온 고양이는 예전에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처럼 꼬리가 자라다만 흠 있는 녀석이었다.

(어미 배에서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 개나 고양이 새끼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이 길고양이의 꼬리를 보자 왠지 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생각나서 동생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는 사실 부모님이 아시는 분께 얻어 왔기도 하고 말갛게 웃으며 안기던 녀석에게 푹 빠져서 꼬리가 짧은 흠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고양이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 녀석의 자라다만 꼬리 때문에 강아지와 맺었던 좋은 인연처럼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게 '묘연'이지 않을까 싶다.


동생에겐

죽은 길고양이의 환생 같고

내게는

몇 년을 동고동락하던 강아지의 닮은꼴 같아서 말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고양이의 모든 행동이 다르게 보였다.









' 좋구나 '




이제는 우리 집 고양이가 까끌까끌한 혀로 내 손을 핥아줄 때면 이렇게 생각한다.

강아지가 핥아줄 때면 침이 묻어서 싫을 때도 있었다.

까끌까끌하고 건조한 고양이의 핥음은 침이 묻지 않아서 이제 좋다.




'으르렁 거리네 기분 좋구나 '




내가 쓰다듬어 줬는데 으르렁 거리지 않으면 이제 살짝 섭섭하다.

그래서 으르렁으르렁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쓰다듬게 된다.

으르렁 이 나를 경계해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기분이 좋아서 그런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도 강아지만큼 정들지 않겠지 했던 내게 우리 고양이는 고양이 답게 정드는 법이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슬쩍 와서 다리를 쓱 비비고 지나가고

눈이 마주치면 발라당 뒤집어지고

책상 위에 올라와 지긋이 나를 쳐다보면서 말이다.


그렇게 무던히 있는 듯 없는 듯 불쑥불쑥 나타나 따스한 눈빛을 보내주며 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고양이 뽀뽀 알레르기가 있다.


우리 고양이가 자기 얼굴을 내 얼굴에 비비거나 코로 콩콩거리며 내 뺨에 뽀뽀를 해주고 나면

금세 내 얼굴은 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십여분쯤 주체할 수 없는 가려움에 시달린다.

그럴 때면 얼른 얼굴을 씻으러 화장실로 뛰어가게 되고 그런 나를 이 녀석은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리곤 한다.


세수를 마치고 나오면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알레르기라는 걸 알 길이 없는 고양이를 위해 한바탕 알레르기를 치르고 나면 나는

엄마가 아기에게 뽀뽀하는 것처럼 고양이 이마에 늘 입을 맞춘다. 세수를 하느라 화장실에 간 나를 기다려주는게 예뻐서 말이다.


이상하 고양 이마에는 뽀뽀해도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았다.


나름의 묘연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라 이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함께 동행할 수 있어서 좋다.









걷다 보면 종종 길고양이들을 만나게 된다.

저 아이는 누구의 묘연이 되려나 하는 생각이 볼 때마다 든다.

약간 흠이 있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때면 오히려 그게 인연이 되어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본다.


고양이에게는 알레르기마저도 극복하게 만드는 따스함이 있다.

강아지처럼 살갑게 굴지는 못하지만,

고양이는 늘 주변맴돈다.

살가운 이도 좋지만

늘 주변에 있어주는 이도 좋지 않은가?


그런 따스함을

'묘연'을 맺어 많은 이들이 경험했으면 좋겠다.





  猫  고양이 묘


   緣  인연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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