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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the record Jun 16. 2017

자존감 입기?!

옷은 자존감의 지지대이다.





 사실

‘입기’나‘입다’는

옷을 착용할 때 쓰는 말이라서 보이지도 않는 자존감을 입는다는 건 좀 낯선 표현이다.

이 낯선 자존감 입기는 박사 전공에 맞춰 대학에서 의류학과 강사를 하게 되면서 ‘옷’과 그 옷을 입는 ‘나’란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옷 공부한 사람이

옷 강의하러 가는데..

옷이 고민이라니,


 말장난 같지만 어디를 가나 반말을 듣게 만드는 내 외모는‘대학 강사’라는 직업과는 썩 어울리지 않았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내가 맡았던 강의는 4학년들의 졸업 포트폴리오(패션 브랜드 런칭-사업계획서)였다. 왜소하고 어려 보이는 내 모습은 4학년들에게 신뢰를 주긴 많이 부족해 보였다.






평상시의 나






“나이 들어 보이게 입을까?”

“쎄 보이게 입을까?”

“아냐.. 그냥 나대로 입을까?”


 정답이 없는 질문의 연속이었다. 제풀에 지쳐서 일단 옷은 재껴두고 강의 스킬부터 신경 쓰자 싶어서 조벽 교수님의 ‘명강의 노하우&노와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다 한줄기 빛 같은 부분을 찾았다. 간추리면

 “새 시대의 강의실이 교수님과 학생의 지적 한마당이 되기 위해선 교수라는 권위주의는 없어져야 하지만 교수를 얕잡아 보는 학생이 나오지 않게 옷으로 학생과 교수 간의 안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고 하셨다. 정장 차림으로 말이다.


조벽 교수님은 미국의 미시간 공과대학에서 최우수 교수상을 두 차례나 받은 분이다.
국내에서는 EBS 다큐 프라임 <최고의 교수> 중 한 분으로 선정되면서부터 알려지셨으며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벌떡 일어나서 기쁜 마음으로 옷장 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곧 한숨이 터져 나왔다. 석사 때까지 신진 디자이너로서 파티웨어 브랜드를 운영했던 내게 멀쩡한 정장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해외 패션위크까지 갔다 오면 뭘 해!

 강의 갈 때 입을 옷도 한 개 없는데..”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사실 패션이 업이 된 후로 팔릴 옷, 뜰 옷만 백날 생각했다.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을 빼곤 대부분 샘플하다 망한 옷, 불량 난 옷만 골라 입고 사무실과 공장을 쳇바퀴 돌듯이 맴돌았다.


그간 옷을 만드는 사람이었지만 나 자신은 옷에 있어서 늘 조연이었다.





 “참 미련하게도 살았다”


하며 방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방바닥처럼 납작해졌다. 멍하게 누워 고개를 돌리다가 책장 맨 밑 칸의 ‘의상사회심리(패션+심리)’책과 눈이 마주쳤다. 팔을 뻗어 책을 빼보았다. 누워서 책장을 대충 넘기다 내 시선은 해묵은 전공서의 딱딱한 글 몇 줄에 사로잡혔다.


 페스팅거의 이론이었는데 “자기개념과 일치되지 않는 이미지의 의복은 자기에 대한 모순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불편함과 어색함과 같은 심리적인 부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자기개념과 부합되는 의복이미지를 추구함으로써 일관성 있는 자기를 지속시키게 된다.” 고 했다.





 “심리적인 부조화.. 이거네,

디자이너와 강사는 개념이 다르지..

나도 옷도 바뀌어야겠구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디자이너 때 옷을 몽땅 옷장에서 빼버렸다. 그리고 다시 “대학 강사다운 옷은?" 하고 옷장을 들여다봤다. 선명한 다홍색 원피스가 눈에 띄었다. “다홍색은 나이를 가늠하기 애매하지.. 좀 튀지만 의류학과 강사인데 평범한 정장이 더 이상하겠다.”싶었다. 그리고 조벽 교수님의 말(정장)에 따라서 블랙 롱 재킷을 집어 들었다.


“두려움 따위 제일 숨기기 좋은 게 블랙이니깐.”


그렇게 입고 난 첫 대학 강단에 섰다.







강단에 섰던 첫 날






 사실 디자이너인 나와 강사인 나 자체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 스스로 마음도 옷도 디자이너라는 과거에 얽매인 채로 강사를 하려니 ‘심리적인 부조화’가 찾아왔던 것이다. 괜히 패션위크에 나간 것부터 그간 미련하게 살았다며 자기비하를 했다. 디자이너 땐 그렇게 입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대학 강사에 맞게 선택한 옷으로 나는 납작해진 자신감과 자존감에 숨결을 불어넣는 자존감 입기를 했다.





 상황에 따라 옷 하나에 사람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걸 보면 자존감은 갈대처럼 잘 휘둘리는 녀석이다.

 어쩌면 자존감이 이렇게 줏대가 없어서 지지대 역할을 해줄 옷이 필요한 것 같다.


 자존감이 애초에 뚝심 있는 녀석이었다면 우린 원시인의 그 어깨가 한쪽만 있는 가죽 원피스를 아직도 입고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상황에도 옷 뒤로 숨을 필요도 TPO(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경우 or때)에 맞게 옷을 입을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옷은 자존감의 지지대이다.








  자존감이 흔들리는 건 누구나 겪을 수 있다. 그건 나처럼 외모의 단점 때문이거나 학생들에게 신뢰를 줘야 하는 강사 같은 직업적 특성 등등 다양할 것이다. 자존감 입기는 그런 순간에 대처할 수 있는 팁(tip)으로 낮아진 자존감을 옷 뒤로 숨겨 보호하고, 외모적 단점, 감정이나 상황적 약점으로 낮아진 자존감을 높이는 키높이 깔창이 되어줄 것이다.





 이 자존감 입기는 ‘의상사회심리(패션+심리)’에 일정 부분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자존감 입기라 칭하며 풀어내는 이유는 의상사회심리가 전공서이기 때문이다. 다른 여러 전공서들처럼 쉽지도 술술 읽히지도 않는다. 외모지상주의나 낮아진 자존감이 이슈인 요즘에 꼭 필요한 내용인데도 말이다.


 앙드레 지드는

“쓰여져야 할 모든 이야기들은 이미 다 쓰여졌다.

하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은 다시 쓰여져야 한다.” 고 했다.

‘자존감 입기’는 이런 앙드레 지드의 말처럼 전공서인 ‘의상사회심리’를 기반으로 옷과 자존감을 술술 읽히게 만들고 싶다.










 자존감 입기는 상황에 따라 갈대처럼 나부끼는 자존감을 옷이라는 지지대로 지키는 방법이다.


 또,

 어린 시절 메이커 운동화가 없어 울고 웃는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어른이 된 후에도 자존감에 따라 ‘메이커 운동화’ 같은 것에 휘둘리기도 한다. 솔직히 눈에 다 보는데 어떻게 좋은 것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마음과 생각까지 휘둘리는 건 어린 시절의 한 때로 충분한 것 같다.


 자존감 입기는 그런 것들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상황과 스스로에게 맞는 스타일링으로 심리적 부조화가 찾아오는 것을 막고자 한다.







무슨 학자가

옷차림까지 일일이 신경 써야 하다니..

쯧쯧. 맞습니다.

공부하는 학자가 옷차림에 신경을 써서야 안 되겠지요.

 

하지만 자신의 옷차림마저도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옷차림에 신경(마음) 쓰는 것하고,

겉멋을 부리기 위해 옷차림에 신경(돈) 쓰는 것은

질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상당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명강의 노하우&노와이 中 -

(조벽 교수님)












'자존감 입기'

오프 더 레코드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runch_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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