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의 서로 다른 자존감 & 우울감
삶은 언제나 주객이 전도된다.
나도 첫인상으로 평가당하지만 그런 나도 누군가를 첫인상으로 평가한다.
솔직히 첫인상이 맞을 때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편견은
“저런 사람들은.. **이래.”
라고 일반화시켜 버리는 오만을 범한다. 하지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속담처럼 첫인상으로 전부를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첫인상의 맹점은
겉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 우리들의 내면에 있다.
잘 차려입고 밝게 웃고 성공한 사람이 있다.
그들의 첫인상은 아마 좋을 것이고 행복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에도 낮은 자존감과 우울감으로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냥 이게 다야.
가능성도 숨겨진 장점도 없어.
날 잘 몰라서 그러는데.. 아마 날 제대로 알게 되면 분명 실망만 할 거야.
그러다 결국 형편없다면서 떠나가 버릴걸?”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최근에는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된다.”
며 기뻐도 슬퍼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런 이중적인 사회에서
편견으로 첫인상을 판단하는 우리의 오만과
포커페이스로 기쁨도 슬픔도, 낮은 자존감과 우울감도 가리는
우리의 첫인상은 계속해서 맹점을 만든다.
서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그들과 우리의 민낯 같은 자존감과 우울감을 마주해야 한다.
오만과 편견을 덜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여자와 남자는 서로 다르게 낮은 자존감과 우울함을 겪는다고 한다. 여자는 여자가 알고 남자는 남자가 안다고 하지만 젊은이들은 늙어본 적이 없고, 나이 든 이들과 지금의 젊은이들의 세대 간 차이는 크다. 거기다 화성과 금성이 아닌 지구에서 우린 함께 산다.
그래서
여자의 시선과 남자의 시선을 담은 두 권의 책 속 관점을 보며 좀 더 입체적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독일 최고의 심리상담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우르술라 누버는‘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에서 “당신은 매일 밤 울지만.. 아무도 당신이 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라고 했다.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그녀가 말하는 여자는 이런 느낌이었다.
여자의
자존감은 우울이 갉아먹는다.
한 달 중 일주일(생리) 간 몸도 마음도 피를 흘려서 우울하다. 호르몬 때문이다. 그럼 호르몬이 없어지면 괜찮을까? 그렇지 않다. 여자는 두 번 죽는다고 하는데 생을 다했을 때와 몸이 흘리는 피(호르몬)가 멈췄을 때다. 이게 여자의 우울이다.
여자들은 척쟁이다.
유능한 척, 희생하고 괜찮은 척, 안 아픈 척.. 가면을 쓰고 아파한다. 마음이 아프니 몸이 아픈 건데 몸만 아프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 탓이라며 블랙홀처럼 모든 잘못을 빨아드린다. 그리고 사랑받지 못한 존재라고 결론 내린다. 아내, 엄마, 딸로는 존재하지만 ‘나’라는 자아는 잃어버린다. 그래서 ‘나’ 대신 의무만 남는다.
우울은 완치되기 어렵다.
하지만 우울이 오려고 할 때 자아를 찾아내서 밀쳐낼 순 있다. 우울은 그렇게 쓰는 거다.
단 주의해야 할 건
나를 우울하게 했던 걸로 덕을 보던 이들은 내가 자아를 찾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네가 없으면 난 어떻게 해!’라고 할 것이다. 그땐 ‘그건 네 문제야. 내 문제가 아니야’라고 해줘라.
그리고 등을 돌려버려라.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
오스트리아 상담협회의
명예 부회장인 고트프리트 휘머의 ‘가끔은 남자도 울고 싶다’ 속엔 “남자는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그들은 어느 날 자살할 뿐이다.”라고 했다. IMF와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에겐 남일 같이 않은 말이다.
그가 보는 남자는 이렇게 다가왔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자아상을 강요받는다.
그래서 힘들다.
“아들, 남자는 강하게 크는거야! 성공해서 큰 사람이 되어야 해!”
이렇게 듣고 큰 남자들이 약한 모습을 드러내긴 어렵다. 남자들의 세계에선 과정보단 결과가 중요하다. 덕분에 ‘최고의 **’, ‘올해의 **’은 되건 못 되건 남자를 힘들게 한다.
남자는
불안과 두려움에 쫓기는데 이것 때문에 병이 난다. 남자에겐 성과가 인생의 의미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아버지상은 학습되는데
좋은 아버지 상을 가진 남자는 적다. 그래서 몸은 다 커버렸는데 그 안에 있는 남자는 영혼이 텅 비게 된다. 아들에게 남자도 한계가 있다고 알려주고 불안과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격려해줄 아버지(어른)가 필요하다.
남자들은 몸이 보내는 S.O.S를 들어야 한다. 성공=자존감이란 공식은 남자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남자를 남자이게 하는 건
남자다움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다.
진정 화성과 금성에서 따로 살다 온 사람처럼 남자와 여자의 내면은 다르다.
어쩌면 그래서 ‘오만과 편견’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그녀(엘리자베스)와 그(다아시)의 ‘첫인상’이 빗어낸 편견과 오만 그리고 오해가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내 이야기 같아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렇게 한 발짝 물러서서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보이는 게 왜 주인공들처럼 현실로 닥치면 안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제 첫인상으로 누군가를 꼭 가늠해야 한다면 '오만과 편견'을 떠올리며 상대방을 관객의 입장에서 한 번쯤 바라보길 바란다.
아마
주인공의 입장에서 볼 때보단 좀 더 정확하게 그 여자나 그 남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오만과 자만심
당신의 이기심을 경멸해요.
다른 사람에 대한 당신의 태도도
당신이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남자라고 할지라도
절대 절대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요.
(다아시를 오해했을 때)
나는 장님이었어!
(그 오해가 풀렸을 때)
- 오만과 편견(2006)의 ‘엘리자베스 베넷’ 역 -
'자존감 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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