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쉼표 ❜ 노트 - 혼감(혼자 관리하는 자존감)
“이번 썸머 시즌 어반 컨템포러리 보헤미안을 위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
이런 표현은 패션을 접할 때면 늘 마주치게 된다. 한국말도 외국어도 아닌 ‘보그 병신체’에 둘러싸인 우리의 오늘이다.
보그 병신체는 외래어에 조사만 한글을 붙여서 쓰는 문체를 의미한다.
글로벌 패션지 ‘보그(Vogue)’의 한국어판 등의 패션 관련 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문체로서 허세와 소통의 부재를 꼬집는 신조어이다.
보그 병신체는
패션을 배울 때 익히는 테마(이미지)나 포지셔닝 분류 8가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이 표현할 이미지로 엘레강스와 소피스티케이티드를 정했다면는 8가지 축 표의 중심에서 멀게 찍고
보조적인 이미지는 중심 근처에 찍고 연결해서 아래처럼 찌그러진 팔각형으로 표시한다.
그러고 나면
故 앙드레 김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엘레강스하고 소피스티케이티드 한 ~ ”
식의 패션 이미지(테마)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정해지면 거기에 필요한 색채, 소재 등을 결정하고 옷을 디자인하게 된다. 사실 패션 전공자라면 전공 자체에서 배우는 단어와 조합이기 때문에 크게 이질적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사실 어떤 일이든 업계에서만 쓰이는 표현이나 외래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걸 대중에게 패션을 설명하고 알리는 말로 쓰다 보니 이질적이다 못해
‘보그 병신체’
라는 거부감과 오명을 쓰게 된 것 같다. 추측하자면 패션을 대중에게 소개하면서 알맞게 여과해서 한글로 표현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 한글로 바꿨을 때 묘하게 달리지는 글의 느낌도 한몫했을 것이다.
거기다
보그가 한국판 창간호를 냈을 때가 1996년이니 그 시절 소위‘째(이태리째=이탈리아산)’라 불리며 해외 것을 무분별하게 쫒던 풍토가 아직까지 남은 것일 수도 있다.
패션업계에선
필요한 부분이고 아직 저런 표현을 필요로 하는 일부 대중도 있겠지만, 전체 대중들과 소통해야 하는 패션의 출판과 유통 분야 등에서는 한글로 풀어써서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패션계는 아니지만
해외의 행정 분야에서 ‘보그 병신체’처럼 소통과 이해를 돕지 못하는 언어 사용을 바로 잡은 적이 있다.
1979년 영국에서는
‘쉬운 영어 운동(Plain English Campaign)’이 크리시 마허라는 한 여성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 운동은 영국의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정부 문서의 어려운 영어를 쉽게 바꾸는 작업이었다.
1993년에는
이 운동이 미국에 소개되었고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다.
2010년에
이르러 미국에선 행정 서류에 대한 ‘쉬운 글쓰기 법(Plain Writing Act)’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이제
디자인만 좋으면 물건이 팔리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소통하며 감동을 주는 브랜드들이 뜨고 있다. 패션은 늘 유행에 앞서 가려고 노력하는 분야이다.
그런 소비자들을
‘보그 병신체’
로 놓치지 말고 패션 우리말 쓰기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내일엔,
“자유분방한 도시인이고픈 당신을 위한 이번 여름 필수품.”
으로 글 첫 줄 같은 문구가 바뀌길 바란다.
패션(Fashion)은
영어지만,
입는 우리는 한국사람이니깐!
아시아가
겪은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물리적 식민화가 아니라
정신적 식민화였다.
-키쇼어 마부바니 -
싱가포르의 정책 및 외교전문가.
그의 1998년 글인 ‘Can Asian Think?’의 일부를
마가렛 대처 총리가
본인의 저서인 ‘국가경영’에서 인용한 것을 발췌
'자존감 입기'
오프 더 레코드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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