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In Seoul
맞벌이 부부였던 부모님 덕분에, 어릴 적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다. 엄마는 매일 아침 50분 거리의 할머니 댁에 나를 맡기고 출근했고, 퇴근 후 다시 그곳으로 와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어린이집 입학부터 유치원 졸업까지, 할머니는 내게 친구이자 또 다른 부모님 같은 존재였다. 초등학교에 들어서면서 아빠의 직업 때문에 여러 지역으로 이사를 다니게 되었고, 예전처럼 자주 뵐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덕분에 그 흔한 사춘기 중2병은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의 힐링캠프이자, 일상 속 따뜻한 루틴이었다. 그러던 중학교 졸업 무렵, 문득 ‘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은 저마다의 꿈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막연했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물으면 “엄마처럼 선생님이 될까? 방학이 있으면 좋잖아. 그런데 내 성적으로 교대 갈 수 있을까?” 하고 현실적인 계산부터 했다. 꿈도, 목표도 없으니 공부할 이유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대학을 가야 하니까’가 아니라, 정말 작고 사소하더라도 내가 이루고 싶은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내 꿈은 ‘할머니’였다. 어릴 적 나를 돌봐주신 할머니와 다시 함께 사는 것, 남은 생을 함께 보내는 것. 그게 내 소망이자 공부해야 할 이유였다. 나는 그 마음을 포스트잇에 적어 책상 한가운데 붙였다.
“2008 인서울! 할머니랑 같이 살자!”
그로부터 4년 뒤, 나는 정말로 할머니 댁 하숙생 손녀로 들어갔다. 꿈은, 진짜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