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퇴사 후 백수가 되어보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이 하나 생겼다. 돈 앞에서 비참함. 작아지는 마음.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퇴사를 하고 내가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마련하면 됐다. 모아둔 돈에서 해결하는 방법이 가장 첫 번째고 그것도 부족하면 당근이나 중고나라를 기웃거리면서 집에서 안 쓰던 물건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 무리했지만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다 스스로 해결해 왔다. 어차피 내가 혼자 쓰는 돈을 줄이면 되는 거고 내가 모아둔 돈의 부피를 줄이면 되는 거였으니까.
근데 결혼을 하고 나니 달라졌다. 결혼을 하고 돈을 합쳤는데, 돈을 두배로 모으기는커녕 번아웃으로 힘들다고 회사를 퇴사하는 바람에 돌연 우리 가정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사실 빨간불이 들어온 지도 벌써 7개월째다.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되었고 블로그 부수입을 주수입만큼 만들어보겠다는 큰 소리는 결국 나의 게으름으로 지키지 못했다. 정말 부수입만큼의 돈을 쥐고 남편이 혼자 일해 벌어온 돈으로 둘이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돈을 벌지 못하는, 경제적으로 능력과 가치가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내 명의로 된 카드값을 지불해야 하는 이 시기에는 (나의 신용공여기간에 따르면 매월 12~15일이 카드값 결제기간이다.) 뭔지 모를 불편함, 자기 무능감, 비참함 등 만감이 교차해서 우울하다.
돈이 어디서 그렇게 새는지 한번 살펴보았다.
우선 식비는 정말 많이 안 드는 편이다. 감사하게도 집에서 먹는 식재료들을 거의 친정에서 지원을 해주셔서 외식만 하지 않으면 밥 먹는 데에는 거의 돈이 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아 월에 2~3번 정도 바깥에 나갔을 때만 사 먹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 낮에는 대부분 여러 메뉴를 번갈아가며 집에서 직접 해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친정집에 가면 이고 지고 코스트코 장바구니로 최소 2개는 한가득 반찬과 채소, 과일, 고기 등을 공수해 온다. 아마 그걸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만 원은 될 텐데 알뜰살뜰 살림왕 엄마를 둔 덕에 식비 지출을 아끼고 있다.
그렇다면 또 어디서 나가는 걸까? 살다 보면 식비만 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돈이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먹기 위해 태어나고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니까..
살짝 억울한 마음에 요즘 카드값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무언가 확인해 보니 난임병원 진료비였다. 11월에만 30만 원 넘게 썼다. 내 카드로 결제한 것만 이 금액이고 남편 카드로는 180만 원 정도 썼고 정부 지원금으로 110만 원은 환급받았다. 실비 보험 청구도 안 돼서 시험관 시술에 필요한 최소 비용 외에는 고스란히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 병원에 가는 길도 왕복 40km라 주유하는 시기도 금세 돌아온다. 사실 차 타고 가는 곳이 난임병원 또는 친정이 전부인데 주유 몇 번 하면 돈이 후루룩 나가버리는 게 현실이다.
주변에서 다 인정할 만큼 화장품과 옷을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던 나는 요즘 그 품목에서는 소비를 대폭 줄였다. 거의 0에 수렴할 정도로. 대신 은혜를 갚는 까치가 되었다. 생일을 축하해 준 사람들에게 마음을 보답할 때 선물로 대리만족한다. 받았으니 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정말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는 염치 불고한 요즘이다. 옷은 종종 리폼해서 입고 있다. 10년 정도 입었던 롱 모직 코트가 지겨워졌는데, 동네 산책하다 보니 리폼 수선집이 있어 숏코트로 잘라 새 옷처럼 만들었다. 그렇게 코트 한 벌, 그리고 트위드 재킷을 잘라 조끼를 만들고 나니 옷 2벌이 생긴 기분이었다. 버리지 않아도 돼서 죄책감도 덜어서 좋고 새로 생긴 기분이라 지루함도 덜었다.
아무쪼록 나가야 하는 돈, 써야 하는 돈, 쓸 수밖에 없는 돈을 썼는데 모아보니 또 큰돈이 내 앞에 청구되어 있어 오늘도 나는 울적했다. '이런 글 쓸 시간에 돈이나 버세요.'라고 할 수도 있다. 맞다. 차라리 이런 글을 쓸 시간에 수익이 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려야죠. 예 압니다 알아요. 하지만 한 번은 이렇게 좀 털어놓고 싶었다. 운다고 해결되는 것도 없는데 격월로 카드값 내는 달만 되면 그렇게 울적하고 나 스스로가 초라해져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내내 울기도 했다. 자기 연민일까, 무능일까, 아니면 반등하기 위한 마지막 시간일까.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래도 이런 시기를 보내면서 채움보다는 비움의 중요성을 느끼며 최대한 나누고 비우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기르게 되었다. 자족감을 느끼는 방법을 터득했고 요리 실력이 향상되었다. 중요한 것에 집중하여 돈과 에너지, 마음을 써야겠다고 다짐도 한다. 돈 때문에 비참했지만 돈 때문에 성장하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