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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가족 직업군인 아빠가 열 살짜리 딸에게 쓴 편지

27년 전 오늘, 1998년 10살의 딸에게 아빠가 보낸 편지

by 깨알쟁이

초 3 때 아빠랑 엄마 나는 주말가족이었다.

아빠는 충남 논산 (지금의 계룡시) 엄마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왔기에 나는 엄마랑 함께 서울에 살았고, 아빠는 주말마다 또는 몇 주에 한 번씩 영등포역에 왔다. 주 6일 근무였던 그 시절 그때에는 지금보다 주말이 훨씬 더 짧았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에 영등포역에서 기차를 타는 아빠를 보낼 때는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다 집에 왔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좋은 기억은 아빠는 나에게 엄마에게 자주 편지를 써주셨다. 아마 이때 받은 사랑을 통해 내가 주변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아빠는 직접 편지를 전달해주기도 했고 우편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늘 그 편지들은 나에게 눈물의 편지가 되었지만.. 흑흑

다시 생각해도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기억이고 재산이다

그리고 우리 아빠는 다시 봐도 참 다정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연아

아빠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하여야 좋았을 것을 너무나 짧았던 순간을 보내고 나니 가슴이 아팠단다.

평소 같았으면 영락교회에 갈 시간을 쪼개어서 아빠하고 삼진 APT 마당에서 손이 시려하지도 즐겁게 미끄럼도 타고 그네도 탔지.

그리고 두 번째 놀이터에 가서 타이어를 밟으면서 가위바위보도 했었지.


나연아! 미안해.

일주일 동안 아빠를 얼마나 기다렸겠니.

그런데 고작 1시간도 같이 지내지 못했으니. 용서해 다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가급적 없도록 아빠가 노력할게.

그리고 너의 표현대로 이렇게 빨리 헤어지니 정말 싫었어. 그렇지만 참았단다. 아빠는 너하고 함께 놀고 싶어서 눈물이 가득했어.

밥 금식 안 하고 골고루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낼게.

그리고 네가 남기고 간 바나나를 감사하면서 먹겠다. 고맙다.


우리 나연이가 많이 컸다는 것을 아빠는 느낀다.

혼자서 버스 타고 집에 오면서 많이 힘들 텐데 잘 지내는 것을 보니 참으로 대견스럽구나.

거기다가 부반장까지 하고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나연이를 보니 정말이지 자랑스럽다.


나연아!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아다오. 여름방학이 되니 우리 세 식구가 매일같이 얼굴을 보면서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꾹 참고 어려운 점이 있으면 할아버지께도 전화하고 할머니께도 전화하고 아빠가 또 매일 전화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어린 너에게 너무나 큰 짐을 준 것 같아서 아빠는 늘 불안하지만 오히려 아빠 걱정하는 나연이의 마음을 보니 매우 든든하다.

나연이는 훌륭한 사람이다.

또한 점점 커가면서 더욱더 큰 사람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항상 나연이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함께 하신단다.

잠시도 주님은 나연이 결을 떠나지 않는다.

나연이 코하고 잠들 때에도 주님은 이부자리보다 더 따뜻한 사랑의 이불과 베개를 가지고 꿈나라에서 천사님을 보내 주신단다.

잘 지내 나연아.

아빠가.

1998.03.16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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