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첩이 맞을까

by 홍성화

<대하 찜, 대하 구이>

아버님께서 사주신 자연산 대하

양식 대하보다 수염이 엄청 길다.

소주를 부어서 찌면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를 없앨 수 있다.

찜 반 & 구이 반

구이는 버터 대신 코코넛 오일을 두르고 구웠다.

해산물 요리와 코코넛 오일은 환상 궁합이다.

구워지면서 나는 향도 일품이다. 아가씨가 이 향에 반했다.

구이 반, 찜 반

정말 비린내 안 나고 담백하고 맛있었다.

오통통한 살이 식감을 살리고 쫀쫀해 식구들이 올

추석에 가장 맛있게 많이 먹었다.




<소고기 채끝살 구이>

명절 전날 식구들 모두 시부모님 떡방앗간 일 도와드리고 들어와 밤 10시 넘어 저녁을 먹었다.

떡 팔면서 종일 왔다 갔다 하고 서있었더니 나도 발바닥에 불이 났다.

앉아서 밥 먹는 게 세상 편하고 꿈만 같았다.


아가씨와 막내가 특히 더 좋아하는 소고기.

근처 단골 정육점에서 채끝살로 사라고 알려줬다.

같은 고기를 사도 바로 먹기 좋게 숙성된, 맛있고 신선한 고기를 주시기 때문이다.

찌개에 넣으라고 차돌박이 한팩도 서비스로 주셨다.

우리는 명절 떡을 골고루 드렸다.


마블링이 살아있는 특수부위 토시살을 먹고 싶었지만

감당 안 되는 가격에 패스했다.

작년 설에 다들 너무너무 고생했다고, 보상심리로 고급진 부위로만 왕창 먹었는데, 후폭풍이 길었다.

순간의 황홀한 맛에 너무 현혹되지 않기로 했다.

한번 경험으로 족하다.

상대적으로는 저렴하지만 이 또한 비싼 채끝살도 평소에 자주 못 먹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명절은 특별한지도 모르겠다.

추석 대목 장사로 아버님께서 지갑을 여셨다.


촉촉한 육즙과 살살 녹는 부드러움은 채끝살도 환상적이다. 얼마 전 당근라페 만들다 남은 홀그레인머스타드와 먹으니 참기름소금장보다도 훨씬 더 맛있었다.

겨자씨를 따로 먹을 일이 없는데 이렇게 소고기의 느끼함을 깔끔하게 잡아주다니, 홀그레인머스타드 때문에 고기를 더 많이 먹었다. 정말 쉬지 않고 들어가더라.




<LA양념갈비>

식구들이 모두 좋아하는 갈비다.

동서 친정부모님께서 보내주셔서 넘치게 잘 먹었다.

명절 내내 먹어도 먹어도 맛있게 먹었으니 고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듯.




<반찬>

뭘 해도 이제는 10인분 이상 해야 한다.

앞으로도 식구가 늘어날 예정이다.



무생채

초등 3학년 막내가 무껍질을 벗겨주고 채칼로 무를 썰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양념부터.

양이 많아 두 번에 나눠 무쳤다.

든든했다.

연휴 내내 충분했다.

표현 잘 안 하시는 어머니께서도 맛있다고 하셨다.



숙주나물

2 봉지

어렸을 때부터 평소에는 콩나물을 즐겨 먹고

명절에는 숙주나물을 많이 먹었다.


녹두로 키워낸 숙주는

체내에 쌓인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하는 데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먹게 되는 명절에 엄마가 숙주나물을 꼭 하셨나 보다.

보고 배워서 그런지 나도 자연스럽게 명절마다 숙주나물을 무친다.

소금 살짝, 가자미 액젓 넣어 무쳤는데

아이들도 계속 입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은근 인기 많은 반찬 중 하나다.

아삭한 식감으로 사로잡고 ‘천연 해독제‘ 기능으로 저절로 입맛 당기는 숙주나물.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 운동을 촉진하고 변비 예방에 효과적이라 기름진 음식이 많은 명절 음식 속에서 건강을 지켜주는 으뜸 반찬이란 생각이 들었다.



멸치볶음 & 진미채 볶음

쉬운 것 같으면서도 평소엔 잘 안 되는 반찬이다.

네이버 블로그 보고 만들었다.

마른반찬을 좋아하시는 어머님께서 원하셔서 했다.

덕분에 비슷한 식성을 가진 남편도 잘 먹었다.

맛있으면 즐겁고 즐거우면 건강에도 좋다.



해파리냉채

아랫집 아주머니께서 내가 좋아하는 거라며 따로 만들어주셨다.

밥 없이 이것만 접시에 한가득 먹고 남은 걸 그릇에 담아놨다.

마늘이 많이 들어갔다며 걱정하셨는데,

마늘이 많이 들어가서 난 더 맛있었다.

특히, 나와 음식 궁합이 제일 잘 맞는 시아버님께서도 맛있게 잘 드셨다.

아주머니, 친정 엄마처럼 늘 저를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친정에 자주 못 가도 아주머니 덕분에 엄마를 느낄 수 있어요. 진심 감사드립니다.



우무묵무침

옆집 아주머니께서는 명절마다 이 묵을 자주 하신다. 덕분에 우리도 먹는다.

우뭇가사리를 햇볕에 말린 뒤 끓여 나온 앙금을 굳혀서 만든 것

결혼하면서부터 먹기 시작한 신기한 음식이다.

청포묵과 도토리묵만 먹어봤지 우무묵은 있는지도 몰랐다.

시부모님께서는 이 우묵묵을 여름 내내 즐겨드신다.

올 추석에도 밥반찬으로 맛있게 드셨다.

특별한 맛이 나는 건 아닌데 왠지 건강해지는 느낌이 드는 음식이다. 속도 편하고 몸도 가볍고.

숙주나물과 마찬가지로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가 많다고 하니 앞으로도 즐겨 먹어야겠다.



전(야채 전, 동그랑땡)

막내가 계란 한 판 풀어줬는데 다 썼다.

이번 명절 음식 준비할 때 막내 덕분에 매번 혼자 하던 수고를 덜었다.

열 살 남자아이도 생각보다 잘한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팽이버섯, 느타리버섯, 숙주나물, 미나리, 게맛살

계란물에 적셨더니 금세 숨이 죽었다.


냉동제품이지만 크고 도톰하고 육즙 팡팡 나오는 맛난 동그랑땡으로.

한 봉지에 10개 밖에 안 들어있어서 네 봉지 부쳤다.

사진엔 없지만 해물완자전까지.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없더라.


어머님께서 미리 만들어 놓으신 양념게장과 열무 물김치도 명절 내내 밥도둑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정말 그랬다.

모든 게 풍요롭고 풍족한 명절이었다.

가을이 좋긴 좋구나! 추석 명절이 다른 명절보다도 더 풍성하긴 하구나! 감사한 연휴다.

산 게 더 많지만, 서로 나누고 베푸는 것들도 많아

마음까지 부자가 된 추석이었다.

풍요로울 때 감사하고 더 겸손해야지!


특히 식구들 모두 맛있게 먹고 때깔 좋은 얼굴로 돌아갔으니,

나도 이제부터 힘차게 10월을 달려봐야겠다.


며느리이면서 주부는 힘들지만 그래도 끝이 있어 다행이다.

식구들 오기 전부터 쓸고 닦고 정리 정돈하고 음식 준비하고 차리고 차리고, 치우고 또 치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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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고달프고 힘드셨을 텐데…

철없이 많이 도와드리지 못한 어린 시절이 생각나 엄마랑 어젯밤 통화를 했다.

통화 시간이 한 시간을 넘어 두 시간도 넘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전화기 너머로 쉬지 않고 엄마의 말이 이어졌다.

며느리로 살면서 그동안 속에만 담아놓고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것들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어 계속 쏟아졌다.

그 옛날 아랫집에 우리 집이 있었음에도 눈만 뜨면 윗집 큰댁에서 식모처럼 살다시피 했던 둘째 며느리의

몸고생, 맘고생한 이야기.

어렸던 4남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속앓이.


울 엄마, 정말 애쓰셨네.

엄마, 진짜 힘들었겠다.

울 엄마, 대단해!


추임새 넣어가며

묵묵히 계속 들어드렸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속이 후련해지셨기를 바라며.

새발의 피겠지만 그래도.


넋두리를 그저 들어주는 맘 편한 상대가 엄마한테는 필요했을 텐데.

누구한테 이런 얘기를 하겠나.

스스럼없는 딸이 가장 편한 순간이 바로 지금일 테지.


일흔 중반이 다 되어 생전 처음으로 집에서 명절 아침에 편하게 밥을 해 먹었다고 하신 엄마 얘기에 박수를 쳐드렸다.

축하해. 엄마


시집살이, 며느리 살이로 짓눌린 무게가 반평생이나 다름없는 우리 엄마들.


그에 비하면 난 정말 티끌만큼도 아닌데 힘들다 했다.

스트레스받았다.

그런데 그것도 이젠 스치듯 지나갔다.

물론 금방 반복되겠지만 어쨌든 2025년 추석은 끝났다.

좋다. 너무 좋다. 너무너무너무.

끝나서 에너지가 불끈 솟는다. 콧노래도 절로 나온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 할 때는

나도 물론 즐겁고 반갑고 좋다.

그렇지만 며느리들이 유독 스트레스를 받는 데에는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닐 터.


잔치를 치르는 일이나

큰 전쟁과도 같은 명절을 비장한 마음으로 치르는 거나

며느리들에겐 마찬가지다.


그만큼 부담이 크고 안 할 수도 없다.

며느리 사표를 쓰거나

며느리 파업을 하지 않는 이상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 생각을 고치고 마음을 다시 정비해도 힘든 건 힘들다.

해도 해도 끝날 것 같지 않고 공도 없는 전쟁


어쨌든 이번 명절은 끝다서 다행이다.

끝나니 불같던 마음이 알아서 사그라드는 것도 묘하다.

챙겨주고도

더 많이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이 남는 걸 느낄 때 나란 사람의 이중성에도 흠칫하며 놀란다.


아무튼 모두 탈없이 지나간 거에 감사하다.


추석아, 안녕!

다음 명절엔 조금 더 너그러워진 나와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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