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성화 Mar 29. 2024

엄마 택배와 그냥 택배의 차이

2024년 3월 26일(화) 일기


퇴근해서 보니 엄마 택배가 정면으로 보였다.

우스갯소리로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게 택배 오는 거라는데 ㅋㅋ

부모님 택배는 택배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반갑다.

주말에 엄마와 잠깐 통화를 했는데 파김치를 부쳐주고 싶다고 물어보셨다.


요즘 우리집 텃밭에도 겨울을 견디고 자란 쪽파가 많아서 보기만 해도 생기가 돋는다. 나는 주로 그때그때 데쳐서 파나물을 해 먹곤 하는데, 허리도 안 좋으신 엄마가 딸내미 주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파김치를 하셨다고.. 에고 ㅜㅜ 터치만 하면 걸리는 전화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 드리는 못난 딸내미인데 엄마는 뭐가 예쁘다고..


그냥 부쳐주셔도 되는데 꼭 물어보신다.

왜냐하면 시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딸에게 김치를 부쳐주는 것도 꽤 조심스러우신 모양이기 때문이다.

시아버지께서 김치를 엄청 좋아하셔서 철마다 색다른 김치를 시어머니도 자주 하시곤 했는데 떡방앗간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몸도 힘들다 보니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이런 시어머니를 생각해서 엄마는 도움을 주고 싶으신 거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감사하게 받고 맛있게 먹는다.

울엄마 손맛은 누구나 인정하는 맛이라서 걱정이 없다.

결혼하고 10년 넘게 살면서 시아버지께서 누굴 칭찬하거나 평가하는 걸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요즘은 다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요 근래에 ‘안사돈 김치' 맛있다고 친한 지인들에게 자랑까지 하셨단다. 부모님 세대는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우리 아버님도 칭찬에 무척 서투르시다. 표현하는 건 참 좋은 일인데 면전에서 직접 말로 하는 것을 참 멋쩍어하시는 아버님. 그런 아버님께서 엄마 닮아서 손맛이 좋다고 가끔 칭찬을 하시며 매우 흡족해하신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 아버님한테 칭찬도 다 듣고. ㅋㅋ


튼튼하고 단단한 박스만 봐도 흐뭇하다. 포장은 아빠 솜씨 ㅎ

도시에서는 박스도 흔하겠지만 시골에서는 이런 튼튼하고 좋은 박스도 구하기 어려워 평소 잘 모아놓으셨다가 자식들에게 뭔가를 부쳐주실 때마다 야무지게 사용하신다.


택배 상자를 열고 맨 위 신문지를 걷었더니 빈 공간에 호두가 가득 차 있었다.


일반 택배는 정확하게 내돈내산 물품이 오지만 엄마 택배는 돈 주고도 못 사는 보물과도 같은 것들이 많이 온다.

어머나!!


아빠 호두 이제 없는 줄 알았는데 부모님 드실 것까지 다 나에게 부치셨나 보다. 힘들게 농사지으셔서 일일이 수확하는 것도 어려운 호두를 아빠는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다 퍼주신다. 돈을 주고도 이렇게 좋은 호두는 살 수 없는데..

큰 지퍼백에 옮겨 담으니 가득이다. 이것도 꽤 오래 먹을 수 있는 양이라서 정말 감사하다.


내돈내산 택배는 지불한 가격에 딱 맞는 것만 보내주고 덤이라는 게 없는데 부모님 택배는 가격 생각 전혀 안 하고 손해 보는 장사(?)를 평생 하시면서도 따불, 따따불해서 더 보내주시고 더 못 보내줘서 미안하다고까지 하는 그런 택배다.


같은 선상에서 빈 공간이 생기면 그냥 택배는 포장용 에어캡이나 공기 충전재를 채워서 보내주는데, 부모님 택배는 다르다. 하나라도 더, 아니면 뭘 더 보내줄 수 있을까 싶어 한참 고심을 하고 빈 공간을 필요한 것들로 아낌없이 채워서 보내주신다.


그냥 택배는 택배비 또한 물건과 수량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반면 부모님 택배는 무조건 부모님이 부담하신다.


차가 없어 오토바이 뒤에 실어 우체국까지 가서 보내주신 정성을 두고두고 기억하자!!


아빠 호두는 신선하고 고소해서 정말 맛있다.

예전에는 맛없다고 견과류 자체를 잘 안 먹었었다. 그런데 작년 겨울부터 건강 챙긴다고 먹기 시작한 견과류가 몸에도 좋고 너무 맛있어서 이제는 그 소중함을 아주 잘 안다. 아빠 생각하면서 진짜 한 톨도 흘리지 말고 끝까지 다 까먹어야지!


그런데 이 검은색 봉지의 정체는??

무게도 3.7kg이나 된다.

바로바로 작년 가을에 추수한 "서리태"다.

떡방앗간 떡 만들 때 쓰시라고 보내주신 것. 사돈까지 챙기시는 우리 엄마, 아빠!

친정 한번 갔다 오면 타이어가 주저앉을 정도로 바리바리 싸주시는 친정 부모님이 계시는가 하면 친정 살림 거덜 내는 (이쁜) 도둑 막내 딸내미도 있다. 사돈에게 도움 되는 거라면 뭐든 보내주신다.


자식이 부모 마음을 다 알면 부모에게 함부로 못한다는 말, 자식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 말.  나도 늘 명심해야지!!


보물을 발견해 나가듯 하나씩 조심스럽게 꺼내보다 드디어 파김치를 열어볼 차례가 왔다.

이렇게나 많이... 이걸 다 다듬으신 생각을 하니 김치를 값으로 매겼을 때 비싸다는 생각을 절대 할 수가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싸다고 생각 들겠지만 이건 기계로 다듬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다 수작업이지. 대량으로 김치를 다루는 곳보다 더 깨끗하게 다듬고 씻어서 양념까지 모두 다 농사 지어 좋은 것으로만 만든 파김치다. 공들인 정성과 시간, 가치로만 따지면 고가인데 값을 함부로 매길 수가 없다. 백화점에 납품하는 값비싼 김치보다도 우리 엄마 김치가 최고다. 대통령도 이런 김치는 못 먹어보셨을걸!


둘째가 파김치 냄새를 맡더니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초등 4학년이 아이답지 않게 ㅋ)


엄마, 우리 수육 해서 같이 먹어요.
수육이랑 파김치랑 너무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먹을 줄 아는 둘째가 벌써부터 수육을 떠올린다. ㅎ


엄마랑 통화하고 나서 바로 김치통도 깨끗이 씻어놨다.

엄마가 김장봉투에 켜켜이 담으신 모습을 떠올리며 나도 김치통에 차곡차곡 옮겨 담았다.

큰 김치통으로 한 통 나왔다.

어디 보자~ 아직 안 익었지만 그래도 맛은 봐야지!

엄마는 싱거우면 굵은소금을 더 뿌리라고 하셨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익으면 정말 맛있을 그런 맛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따끈따끈한 밥 한 공기 얼른 퍼서 뚝딱하고 싶지만 맛있게 익을 때까지 며칠만 더 기다리자!

뚜껑까지 완전히 닫고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다용도실에 갖다 놓았다.




그냥 택배는 감정이 없지만

부모님 택배는 자식 생각하는 마음과 사랑이 넘치셔서 무한대다.

수학기호 : 무한대

그래서 먹거나 사용하는 내내 부모님 정성에 놀라고 끝없는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살아가면서 부모님의 사랑이 유독 진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추억하며 그리워할 때가 있다. 그럴 땐 피가 눈가로 쏠리는 느낌과 함께 눈가가 뜨꺼워지면서 눈물이 고인다. 가슴에선 용광로 같은 뜨거운 기운도 솟구치고.

같은 핏줄로 연결된 부모-자식의 인연은 그만큼 진한 거다.


파김치 엄마 택배로 오늘 난 부모님의 끈끈한 사랑을 또 한 번 깊이 느꼈다. 김치통을 다 비울 때까지 울엄마, 울아빠 생각이 많이 날 거 같다.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줄 줄도 안다. 이것만큼은 우리 삼형제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줄 거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사랑과 정이 넘치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엄마 택배와 그냥 택배를 비교해 보기도 처음인데 참 묘했다. 단순 비교가 아니라 견주면서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더 깊이 와닿았다. 바쁜 일상에서 공중에 흩어져 있던 부모님에 대한 애착도 한데 모여진 느낌도 들어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번 기회에 부모님과 전화 한 통화라도 더 하고 더 살가운 내가 되어야겠다.



#엄마 택배와 그냥 택배의 차이

작가의 이전글 나의 구중궁궐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