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와 글로 겸손하게 살고 싶다.
2월 중순쯤에 친정집 리모델링 공사가 끝났다.
엄마, 아빠를 위해 글씨를 썼다.
오며 가며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드렸다.
속정은 따뜻한데 표현이 너무 무뚝뚝하신 아빠.
친절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은 아빠 옆에서
엄마는 여자로서 평생 힘드셨다고 하셨다.
한 번도 외도하지 않고 생활력 강한 거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셨다는 우리 엄마.
두 분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기를 빈다.
지금 부모님께 바라는 건 건강과 행복 이 두 가지뿐이다.
그리고 아래 글씨는 친구 부탁으로 썼다.
신혼집에 선물할 거라고 했다.
부탁받는 동시에 위 문구가 생각났다.
나도 놀랐다.
마치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글씨 모양도 느낌대로 그냥 썼다.
내가 쓰는데, 내 글씨인데
글귀가 주는 그때그때의 느낌이 달라
글씨 모양도 그때그때 다르다.
마침 문구점에서 사 온 벌 스티커가 있어 붙였다.
사려고 산 게 아니었다. 충동 구매였다.
참 묘했다.
‘이 글씨를 쓰려고 샀나?’
‘사고 싶은 이유가 있었네!’
요즘에는 이런 생각 들 때가 많다.
남편 편에 글씨를 친구에게 보냈다.
맘에 들어할지 어떨지 염려하며..
친구도 바쁜 시간을 쪼개
글귀와 어울리게 그림을 그렸다.
우리 둘의 첫 합동 작품이 되었다.
며칠 뒤 친구 회사 부장님 따님의 신혼집에 걸렸다.
맘에 꼭 든다
는 말에 감사했다.
친구 덕분에 오랜만에 붓과 놀았다.
글씨로 나 역시 힐링했다.
이분의 글씨와는 감히 견줄 수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그러나
자판 글씨가 익숙한 세상에서
지금을 사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난 손으로 쓰는 글씨만큼은 자신 있다.
자만하지 않고
벼루 10개를 밑창 낼만큼,
붓 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 만큼
쓰고 또 쓰겠다.
꾸준함과 끈기로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글씨와 글을 내 마음에 담는 게 나다운 인생이란 걸
중년이 되고서야 알았다.
최근에 깨달았다. 나이 듦이 감사하고 여기서 더 가면 또 어떤 배움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도 된다.
글씨와 글이 어우러져 잘 익어가는 내가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