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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다운 밥으로 인생을 먹고 배우다.

삼백 그릇의 정신을 닮자

by 홍성화
콩 하나요!

지난 3월 22일, 강남 센트럴시티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삼백집으로 갔습니다.

오후 1시.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을 순 없었죠!

밖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밥 다운 밥을 먹으려고 합니다.

삼백집 콩나물국밥

한 끼 식사로 돈 만원이 넘는 시대.

서울에서 9,000원을 내고 아주 만족스럽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속까지 뜨끈뜨끈해지면서 든든하게 먹은 콩나물국밥 덕분에 이후 일정도 즐거웠지요.



1947년 전주에서 삼백집의 창업자,

이봉순 할머니를 아시나요?

간판 없는 국밥집을 왜 '삼백집'이라 부를까요?

하루에 삼백그릇!
창업자 이봉순 할머니는 아무리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도 삼백 그릇 이상은 팔지 않았다고 합니다. 삼백 그릇이 다 팔리면 오전이라 하더라도 문을 닫았다는데요. 이런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이 간판 없는 이 국밥집을 '삼백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에 가면 삼백집 본점이 있습니다. 1947년경 지금의 자리에 이봉순 할머니께서 허름하고 초라한 국밥집을 시작하셨습니다. 지금 대표는 할머니의 아드님인 조정래 씨인데요. 곧 있으면 손자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 하니 70여 년의 전통이 이어지는 게 대단해 보입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도 콩나물국밥을 파는 곳이 세네 군데 있습니다.

모두 전주식 콩나물국밥집입니다. 그래서인지 날계란이 따로 나오거나 국밥 위에 깨뜨려 나오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면 똑같습니다. 맛도 비슷해요.


그러나 처음에는 삼백집만 날계란 하나가 얹혀져 나왔습니다. 지금은 콩나물국밥을 파는 다른 식당에서도 삼백집처럼 날계란이 나오니까 차이를 잘 못 느낍니다.

그래서 알고 먹어야 합니다.


삼백집은 우리 콩으로 기른 무농약 콩나물만을 사용한다고 해요. 평소에도 즐겨 먹는 식재료가 콩나물입니다. 가격 대비 영양가 많고 면역력에도 좋다고 해서 자주 먹어요. 특히 저희 가족은 콩나물밥을 자주 만들어 먹기 때문에 마트에서 살 때도 무농약으로만 사고 있습니다.

삼백집이 ‘전주콩나물영농조합‘에서 기른 100% 친환경 무농약 콩나물만 사용한다고 하니 믿음이 생깁니다. 육수와 양념이 정말 담백하고요. 먹고 나면 속이 편합니다. 저는 바깥 음식을 먹으면 이상하게 가스가 잘 차고 배에서 꾸룩꾸룩 소리가 잘 나는 편인데요. 삼백집 콩나물국밥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진짜 속이 편해서 계속 찾게 됩니다.


창업자 이봉순 할머니께서는 아무리 손님이 많이 찾아와도 삼백 그릇 이상은 팔지 않았다고 하셔서, 일하는 분께 살짝 여쭤봤습니다. 마침 제 옆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거든요. ㅎ

지금도 삼백 그릇만 팔아요?


삼백집 이모님이 웃으며 대답하시기를

지금은 안 그러죠! 육수 레시피가 있으니까.
옛날엔 육수 떨어지면 다시 끓이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렸고…


제가 여쭤본 포인트랑은 조금 달라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예상한 대답이긴 했습니다.


1947년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긴 하죠!


육수가 다 떨어져 더 못 판 게 아니라

이봉순 할머니는 삼백 그릇이 다 나가면 무조건 문을 닫은 것입니다.

더 많이 팔아 이익을 좇기보다 정성을 다한 삼백 그릇만을 파는 것이 할머니 자신과 손님들에게 모두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거였어요.


밖에서 한 끼를 먹더라도 이런 정신을 갖고 손님을 대하는 곳에서 먹고 싶습니다.

과장된 광고가 아닌 진실된 광고에 끌립니다.

식재료 하나에도 건강과 연결 짓는 식당이 맘에 듭니다. 먹는 게 중요하고 바른 먹거리는 인생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가는 센트럴시티점에도 다음과 같은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은
원칙의 문제이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맞는 말입니다. 원칙의 문제!!

전통의 맛을 지키려는 이 신념!

계란값이 요동을 쳐도 70년 넘게 한결같이 이어오는 날계란 하나와 무농약 콩나물에 무한 신뢰가 생기네요. 70여 년 전통의 맛을 지키기 위해 본사(또는 지역본부)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직접 육수를 끓여 가맹점으로 배송을 한답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육수의 비결도 있고, 한결같은 맛의 시스템도 갖추고 있네요.




삼백집이 소개된 책 가운데 [대통령의 맛집]도 있습니다.

저도 아직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삼백집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맛도 운치도요.

대통령의 맛집 / 21세기북스 / 발매 2010.08.19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짠단짠 음식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건강한 한 끼입니다.

첫째, 속이 정말 편안합니다.

둘째, 맛이 담백해서 확 끌리지는 않지만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거죠! 한 번 먹으면 언젠가는 또 찾게 되는 맛입니다.

셋째, 인테리어 컨셉이 ‘오리지널’과 ‘모던’ 컨셉으로 삼백집만의 매뉴얼에 따라 매장 상황에 맞게 시공된답니다. 국밥집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게 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할 만한 공간으로 구성됩니다.


역사도 깊고, 전통이 살아있는 가게.

원칙이 바탕에 깔려있는 가게.


이만하면 고명환 작가님이 말한 사유의 시선이 ‘정신과 철학에 머물러 있는 그런 가게네! 잘 될 수밖에 없는 가게네!’라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이봉순 할머니께서는 그 어려운 시절에 간판도 없이 국밥 장사를 하시면서 어찌 그런 남다른 사고를 가지셨을까요?


요즘이라면 돈을 벌기 위해 전략적으로 수량을 제한한다 하지만, 1947년대 그 시절에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 마음과 정신이 존경스럽습니다. 이런 철학이라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저도 운영하고 싶습니다. 이런 가게라면 한 그릇만 팔아도 단번에 뿌듯할 겁니다. 존경합니다.

가업을 잇고 유지하는 것도 대단합니다. 이봉순 할머니의 정신을 받들어 아들이 운영하고 곧 손자가 이어간다고 하니 대단한 가게입니다. 먹는장사는 건강과 연결되기 때문에 돈만 좇으며 해서는 오래 못 갑니다. 내 몸이 중요하면 남의 몸도 똑같이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걸 고수하는 가게라는 생각에 먹을 때마다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제가 먹은 국밥은

단순히 음식으로서의 국밥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삼백집 벽에 걸려있는 저 액자의 글귀가 말해주듯

원칙을 지키고 초심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바른 길을 고수하는 것!!


이곳에서 저는 인생을 먹고 인생을 배우고 나왔습니다.


다음에 서울 가서도 삼백집 콩나물국밥을 먹고 싶네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만한 가게 찾기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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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그릇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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