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속 패션]초상화 속 옷

'예술가의 옷'

by 소재수집가

카메라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회화는 한 시대의 미감과 사회의 분위기를 가장 강력하게 기록하는 매체였다. 특히 초상화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한 사람의 얼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계급에 속해 있었는지, 어떤 권력을 가졌는지, 심지어 어떤 교양과 도덕성을 지닌 인물로 보이길 원했는지까지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옷'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를 떠올려보면 옷이 유난히 화려하고, 정교하며, 시선을 붙잡는다. 이것은 단순히 화가의 취향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 유럽에는 '사치금지법'이라는 제도가 존재했다. 누가 어떤 색을 입을 수 있는지, 어떤 직물을 사용할 수 있는지, 금실 자수나 모피 같은 장식은 누구에게 허락되는지까지 모두 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자주색, 금실 자수, 고급 비단과 모피는 오직 왕족과 귀족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래서 초상화 속 옷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언어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화가는 정말 있는 그대로의 옷만을 그렸을까?


사실 그렇지 않았다.

화가들은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이상적인 옷을 만들어내는 창조자였다. 조금 더 화려하게, 조금 더 우아하게, 조금 더 위엄 있어 보이도록 색을 조정하고, 장식을 더하고, 실루엣을 바꾸기도 했다.


말하자면 화가는 그림 속 인물에게 새로운 옷을 입히며 이상적인 정체성을 직조하는 사람이었다. 이 역할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화가가 바로 티치아노다.



16세기 베네치아는 유럽 최고의 직물 산업 중심지였고, 티치아노는 그 최신 패션 감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실크, 벨벳, 다마스크, 모피 같은 고급 직물의 질감을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게 화면 위에 옮겼고, 그 옷을 통해 인물의 권위와 사회적 위상을 설득력 있게 드러냈다. 흥미로운 점은 티치아노가 그린 옷이 실제 유럽 귀족 사회에서 유행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초상화는 베네치아를 넘어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 왕실, 프랑스 귀족 사회로 퍼져나갔고, 그림 속 옷은 곧 '권위 있는 옷'의 기준이 되었다.


귀족들은 초상화를 서로 공유했고, 그 속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옷을 현실에서 따라 입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해 초상화에서 옷을 그리는 화가는 이미 유행을 만들어내는 주체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찰스 5세의 초상화 속 검은색 복식이다. 이 검은 옷은 이후 유럽 궁정 사회에서 권위 있는 남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흐름을 가장 전략적으로 활용한 화가가 영국의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이다. 홀바인은 옷을 통해 왕권과 궁정 질서를 설계했다. 그의 그림 속에서 옷은 결코 우연히 그려지지 않는다. 실루엣, 재봉선, 단추의 배열, 장식 하나까지 모두 계산된 언어였다.



의례용 목걸이인 'S' 목걸이는 왕의 직속 신하라는 정치적 위치를 드러내는 장치였고, 슬래시드 슬리브, 더블릿, 러프 칼라, 모피 트리밍은 권력과 위엄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는 요소였다. 옷이 지닌 힘을 통해 왕권의 이미지는 그림 밖으로 확산되었다.


이처럼 이 시기의 화가들은 옷을 단순히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실제 의복 제작과 디자인에까지 관여하며 인물의 신분뿐 아니라 성격과 태도, 때로는 정치적 목적까지 옷에 담아냈다.


물론 이 시대의 옷은 대중에게 열려 있지 않았다. 궁정과 귀족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만 통용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패션'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상화는 그 시대의 미감과 사회적 분위기를 가장 밀도 높게 담아낸 시각 언어였고, 그 안에서 옷은 이미 말하고, 드러내고, 설득하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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