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초 추운 겨울날. 서초동에서의 추억들
패스트파이브를 시작한 지 벌써 만 4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정신없이 달려왔고 앞으로는 더 정신없겠지만, 창업 초기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을 남겨 본다.
1. 부동산 100개 돌아보기
패스트파이브는 2014년 말 신사동 패스트트랙아시아 사무실에서 4명이 같이 시작했다. 당시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이미 4개의 비즈니스(맛집 배달, 신선식품 이커머스, 패션O2O, 교육)를 운영해봤기 때문에 창업 초기에 어떤 수준의 실행 속도가 필요한 지를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실행 = 빨리/잘 하는 거'란 정의 하에 모든 일들을 병적으로 빨리 처리하는데 집중했었다.
그중 하나가 부동산의 선정이었는데, 공간 비즈니스를 하기로 마음먹고서 바로 다음날부터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기 시작했다. 크게 서울 전역을 cover하는 기업형 부동산중개회사들과 우리가 관심 있던 지역의 로컬 복덕방 아저씨들을 꾸준히 만나기 시작했다. 당시엔 거의 10분에 한 번씩 전화벨이 울렸는데, 전화를 받으면 '00 부동산인데요'로 시작해서 일정 조율해서 매물을 보는 식의 무한반복이었다. 대개는 복덕방을 가면 나이 든 할아버지나 아저씨가 스프링노트를 뒤적뒤적하고는 2~3개 정도의 매물을 같이 돌아봤고 대개는 영양가 없는 매물들이 많았다.
강남권의 주요 건물들을 돌아보면서 시세에 대한 감을 쌓아갔다. 역세권이라고 무조건 비싼 것도, 비역세권이라고 싼 것도 아니었다. 임대료는 건물주 마음대로 정하는 거고, 모든 건물은 그 건물만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시세의 범위가 꽤 넓었고, special situation에 따른 arbitrage의 기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의 패스트파이브 1호점을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첫 번째 호점으로 적합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투어를 마치고 다음날 재투어를 해서 지하철역까지의 시간도 재보고 손익도 계산해보고 내부에 들어와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고, 초스피드로 이튿날 임대차 날인까지 마쳤다.
2. 책상/의자 130세트 조립하기
부동산을 계약하고서 여기저기 발품 팔아서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지금이면 최소 20장 정도의 도면이 필요했을 텐데, 당시에는 PPT 2장으로 평면도만 들고서 나머지는 현장에서 바로바로 결정했다. 공사 초기엔 우리가 상상한 느낌의 공간이 나올 수 있을까 불안감이 컸는데, 바닥재를 깔고 조명을 설치하니 제법 그럴싸한 오피스 공간이 나왔다. (큰 회사들의 오피스 인테리어가 별로인 건, 돈을 안 쓰는 게 아니라 의사결정자들의 취향이 올드하기 때문이란 확신을 이때 갖게 되었다)
이제 공간이 세팅되었으니 다음은 책상/의자를 준비해야 했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가성비 좋은 가구를 모두 뒤져서 모델을 선정하고 배송을 받았다. 130세트라고 하면 적어 보일 수 있는데, 이 박스들을 1층에서 3층으로 옮기는 것도 엄청난 노동을 필요로 했다. 하물며 박스를 뜯고, 나사를 박는 조립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인력/시간을 필요로 했다.
총 세 차례 정도 나눠서 조립을 했는데, 갈수록 효율이 높아졌다. 첫날엔 조립도 미숙했고 특히 의자에 나사가 하나 안 들어가기 시작하면(흔히 '빠가난다'라고 하는) 20분은 낑낑 거리며 시간을 낭비하기 일쑤였다. 조립이 끝나고 나서 청소도 오래 걸렸는데 분리수거하고, 날아다니는 스티로폼 가루들을 빗자루로 쓸어내는 것도 비효율적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다들 거의 머신이 되었는데, 책상조/의자조로 나눠서 공장라인처럼 작업대를 마련하고 언박싱을 할 때부터 치울 거를 염두에 두고 분리수거할 뿐만 아니라, 1인 1드릴을 들고서 서로 말하지 않아도 나사 봉지를 뜯어서 반반 나누고 각자 파트를 조립하고 먼저 한 사람이 공통부분을 하고, 완성품을 옮기고.
인부를 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100만원을 더 쓰면 완성된 제품을 바로 받아볼 수 있었지만, 당시의 분위기로는 한 푼이라도 아끼자라는 생각도 있었고 이 과정 자체가 비즈니스의 일부분이란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이 고생하는 과정에서 팀웍이 다져지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 이제는 추억이 돼버린 책상/의자조립
3. 세일즈 고군분투기
패스트파이브를 같이 시작한 4명은 참고로 3명이 공대생, 1명은 공대생 같은 경영대생이다. 모두가 세일즈와는 거리가 먼 삶의 궤적을 지나왔는데, 다른 인력이 없었으니 우리가 직접 세일즈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의욕이 앞섰지만 머쓱한 순간들이 많았다. 인사를 하고, 공간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당최 고객의 속마음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세일즈를 하고 매일 밤 자신의 투어를 공유하면서 어떤 부분을 개선할지 쭉 리스트업하고 이를 실행해보는 작업을 반복했다.
절실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우연한 힌트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세일즈 프로세스가 개선되었다. 고객 입장에서 어떤 컨텐츠/단어가 이해하기 쉬운 지, 어떤 포인트를 어떻게 강조하면 반응이 좋았는지. 무엇보다도 이제는 투어를 진행하면서 '이 분은 입주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이 분은 그냥 구경하러 오셨구나' 정도의 감은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는 주말에도 투어를 진행했는데, 한 번은 앞 선 두 개의 방문예약이 취소되어 방 안에서 낮잠을 자던 도중 고객으로부터 지금 방문해도 되냐는 전화를 받고 비몽사몽으로 1층으로 내려가 투어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계약을 했고 지금은 잘 나가는 스타트업 중 하나인데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두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방이 채워져 가면서 어느덧 3개의 방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근데 마치 슬럼프에 빠진 것처럼 이상하게 계약이 안되었다. 하루/이틀이 지나고 '이번 고객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계약하고 말겠다'란 비장함을 갖고 모든 세일즈에 임했음에도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고생하던 중, 어느 날 입주를 고민하던 고객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와서 이전에 봤던 방을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와 동시에 다른 동료가 남아있던 방을 계약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극적으로 만실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날 저녁 바로 근처에 있는 부일갈비에 가서 어느 때보다도 유쾌한 회식을 했다.
이제는 아득한 2015년 겨울과 봄. 아주 작은 성취였을지 모르지만, 당시엔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고, 낭만도 있었다.
P.S 패스트파이브는 채용 중입니다:) 현재(2018.08) 채용 중인 포지션과 한 줄 JD는 아래와 같습니다. 급하게 뽑는 건 아니고 좋은 인재분이 있다면 언제든 TO는 열려있습니다.
- 커뮤니티매니저: 패스트파이브의 핵심 직군으로 전반적인 호점관리(세일즈, CS, 커뮤니티 빌딩 등)를 수행
- 사업개발: 주거서비스, 리테일(카페, 휘트니스 등) 등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
- 부동산 담당: 패스트파이브의 신규호점 매물을 발굴하고, 건물매입 및 디벨로퍼와의 협업 주도
- 투자 담당: 장기적인 관점에서 패스트파이브의 경쟁력을 높여 줄 스타트업에 Seed 투자(1~3억 규모)
- 브랜드마케팅: 당장의 lead generation, 전환율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브랜드 가치를 생성
- 공간디자이너: 감각적인 라운지, Bar, 회의실 등 패스트파이브의 공간경쟁력을 높여 줄 디자이너
- VMD: 신규호점의 전체적인 공간구성, 가구 select, 디테일한 요소 등을 관리
- 기획자: 패스트파이브 멤버를 위한 모바일앱, 웹페이지 등 기획
- iOS개발자: 패스트파이브 멤버를 위한 모바일앱 개발
- 세일즈: 신규입사자 세일즈 트레이닝 및 전반적인 세일즈 프로세스 업그레이드 및 계약률 제고
- 인턴: 열정있는 졸업예정 대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