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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ug 15. 2018

VC 투자유치 과정에 대하여

스타트업의 관점 vs 투자자의 관점

VC에서 심사역으로 투자하는 입장에도 있어봤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세차례 투자를 받는 입장에도 있어봤다. 양쪽 모두를 경험하니 비교적 그 과정을 객관화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같은 상황에 대해 서로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지 공유해본다.



1. 스타트업이 바라보는 VC


1) 투자받기가 왜 이렇게 힘든가요

스타트업 입장에서 VC투자를 받는 건 너무나 어렵다. VC입장에서 1년에 수백개의 IR자료를 검토하고, 수십개의 회사와 미팅을 하지만 투자까지 이어지는 곳은 심사역 당 적게는 2개 많아야 4개 정도이다. 그렇게 선택받은 회사만이 실제 투자를 받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 못하면 기회를 잡기가 너무 어렵다.


더군다나 스타트업이 하는 사업이라는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데(논리적으로 명확히 설명되는 건 이미 사업기회가 아니다),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하는 난감한 순간이기도 하다. 안될만한 수십가지 이유를 극복하고 될만한 한두가지 이유를 기회로 살리는 게 현실이라면, 투자자와 그 될만한 한두가지 이유에서 sync를 맞춰야만 다음 스토리가 이어질 수 있다. 그런 투자자를 만나는 건 분명 행운이 따라야 한다.


2) 수없이 반복되는 질문들

IR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면 여러 VC들을 만나게 된다. 심사역과 커피를 마시면서 설명하기도 하고, 회사로 들어가 20명을 상대로 피치를 하고 질문에 답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사실 질문은 대동소이하고 오히려 질문의 수준을 보고 역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경험상 핵심질문은 비슷한 경우가 많았고(정말 핵심 중의 핵심까지 가더라도 그 끝은 결국 신념의 영역이다), 본질과 벗어난 질문들이 가끔 뜬금없이 나오면 이를 답변하기도 애매해서 ‘그럴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라며 최대한 나이스하게 둘러대기도 한다.


투자자로 있을 때 내가 예리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이 당황하는 모습에서 ‘내가 이겼다’라는 착각을 했던 경우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돌아가면서 ‘X~신’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3) 관심이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밀당의 시기

스타트업에겐 피를 말리는 순간이다. 첫사랑에게 고백을 하고 Yes/No를 듣기 위해 애타게 기다리건만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검토 중입니다’, ‘내부프로세스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부 분위기는 좋은데 파트너 중에 반대하는 분이 계셔서요’, ‘추가 자료 좀 요청드릴게요’ 등등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얼른 투자를 받아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텐데 마냥 기다릴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답답한 순간이다. 차라리 초반에 ‘저희는 검토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피드백을 받으면 깔끔하게 포기하겠건만 희망고문은 계속 된다. Tip이라면 의사결정자에 가까운 사람 혹은 내부에서 입지가 탄탄한 사람일수록 희망고문이 짧거나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갈팡질팡하는 주니어가 아직 내부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라면 가능성은 매우매우 낮다고 보면 대체로 맞다.


4) 거절하는 어려움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건만 투자가 임박하면 이상하게 경쟁이 붙기 시작한다. 애매하게 보이던 회사도 다른 회사가 투자하려고 하면(특히나 그게 유명한 투자회사일수록) ‘내가 제대로 봤네’하면서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예전엔 퉁명스럽게 대응하던 담당자가 갑자기 친근한 척 하면서 기껏 다 진행했는데 중간에서 부러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회유인지 협박인지 모를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나 투자계약서를 날인하고 입금을 받기 전까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비로소 날인을 하고 나서야 2순위, 3순위로 논의하던 업체에게 통보를 해야하는 상황이 온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다른 곳에서 투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보내면 대개는 아쉬워하는 수준에서 끝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버럭 화를 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본다.



2. VC가 바라보는 스타트업


1) 도무지가 투자할 곳이 없다

스타트업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역시 ‘딜소싱’이다. 상장사는 종목이 정해져있고, 기본적인 정보들이 공개되어있고, 거래량이 충분하다면 원하는 만큼 장내에서 매수할 수 있다. 그러나 비상장사는 투자대상 자체를 발굴해야하고, 괜찮은 회사는 숫자가 제한적이기에 이 회사들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성패를 가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외적으로 누구나 알고있는 투자기회이고, 남들이 다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투자해서 대박나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드물다)


그럼 어떻게해야 딜소싱을 원활하게 만들 수 있을까? 투자하려는 VC들은 어차피 너무 많아서, 좋은 스타트업이 같은 10억이라면 B회사 대신 A회사를 먼저 찾아가야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종합하면 투자회사/투자자의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브랜드를 갖는 회사/사람은 축복받은 소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딜소싱 채널을 만들기 어렵고 따라서 ‘투자할만한 스타트업 발굴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푸념을 어딜가든 들을 수 있다.


2) 보여준 건 없고, 앞으로 하겠다는 얘기만

괜찮아보이는 스타트업 대표님을 만나면 두세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반짝반짝하는 눈빛으로 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으며, 앞으로 엄청난 회사가 될 것이라고 청산유수로 설명하지만 이익은 바라지도 않고 매출 얘기가 나오면 한없이 작아진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어차피 3년뒤 매출 100억, 1000억을 찍겠다는 장밋빛 미래를 믿지도 않지만, 그 정도 수준의 높은 목표를 갖고있지 않다면 투자대상에서 배제하게 된다.


회사로 돌아와서 바쁜 와중에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하고, 추가자료도 요청하고, 주변에 비슷한 회사를 검토해봤던 지인, 검토하는 회사와 유사업종에 있는 지인에게 가능성을 물어보지만 해당산업의 전문가일수록 답변이 부정적일 확률이 높다. 그렇게 미궁속으로 빠진다. 결국 투자를 해주면 결과를 보여주겠다는 스타트업과 결과를 보여주면 투자하겠다는 투자자의 닭과 달걀의 싸움이 된다.


3) 투자해야할 지 말아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모든 투자의사결정은 마음속에서 51:49로 결정된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투자여부를 결정하는 투자심의위원회에서 찬반이 갈리기 마련이다. VC속설에 모두가 동의하는 투자는 오히려 실패하거나 그저그런 수익률을 내고, 모두가 반대하는 투자를 누군가 밀어부쳤을 때 초대박을 낸다는 말이 있다. 투자를 할 지 그 결정의 시작은 혼자서 하는 것이고(엄청 외롭다) 그 이후로는 남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수많은 스타트업과 미팅을 하지만 옥석을 가리긴 너무나 힘들고, 괜찮아보이는 회사를 투심위에 올리더라도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스타트업과 투자심사 담당자의 동상이몽이 지속되다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4) 투자룸 좀 부탁드릴게요

기사에도 아직 나오지 않은 굉장히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해서 혼자 검토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좋은 회사일수록 이미 두세군데가 붙어서 열심히 작업 중인 경우가 많다. 거만한 대표가 얄미울 때도 있지만 그렇게 비딩이 붙은 상황에서는 돈을 투자하겠다고 하면서도 굽신굽신해야하는 웃지못할 상황도 발생한다. 투자자들끼리 경쟁할수록 밸류에이션은 높아지고, 모처럼 잡은 투자기회를 잡기위해 별 수단을 다 쓰게 된다.


그런 회사를 잡는 건 쉽지않다. 계약서 내용까지 다 쓴 상황에서 갑자기 유명회사가 내일 당장 입금하겠다는 sweet offer를 날리기도 하고, 투자 논의를 하는 중에 실적이 더 좋아져서 밸류에이션이 높아지기도 한다. 두세달 가까이 소위 쿠킹했는데 놓치게되면 정신적 데미지가 꽤 크다. 어차피 심사역은 1년에 몇개, 얼마 투자했는지가 중요하고 검토하다 깨진 건 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회사를 만나면 어떻게라도 투자룸을 확보해서 투자까지 클로징해야만 하는 게 투자자들의 숙명이다.



VC가 스타트업의 속사정을 잘 안다면 좋은 회사를 잡고, 또 투자를 안하더라도 원망을 사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스타트업도 VC의 속사정을 이해할수록 투자유치 과정이 수월해지고 반대로 거절당하더라도 악감정을 덜 가질 수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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