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년은 자라 오늘의 글을 씁니다.

by 정상가치
우린 비판에는 과하게 관대하고 칭찬에는 유독 인색하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태수



학창 시절, 교실 구석에는 늘 말이 없던 친구가 하나쯤 있기 마련입니다. 타인과 시선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늘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주눅 들어 있던 아이. 제게는 제가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


글쓰기 시간이었습니다. 모두의 앞에서 제 글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겐 큰 공포였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읽어 내려간 단편 소설에, 고요함을 깨고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출판사 차리면, 네 소설 꼭 내주고 싶다."라고. 어쩌면 나, 글을 꽤 잘 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의 씨앗이 심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 씨앗은 오랜 시간 땅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 본 글짓기 최우수상 상장보다도 그 친구의 말이 더 선명한 자국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흘러, 불현듯 그 기억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블로그라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이고, 1년 넘게 꾸준히 글을 쓰게 할 원동력이 되었죠. 모두 칭찬이라는 흙과 햇볕 덕분이었습니다.


'과도한 칭찬은 금물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하라'.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교육서는 칭찬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한때 저 역시 그 말들을 신봉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칭찬을 좋아하는 제 성향을 억누르고 의식적으로 칭찬에 인색해졌습니다. 칭찬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던 과거의 제가 후회될 뿐입니다.


세상일이란 게 축하를 받으면 작은 일도 기쁜 일이 된다. 반대로 축하받지 못하면 대단한 일도 당연한 일이 되고.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태수



지금의 저는 다행히 칭찬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상에 계신 아버지를 대신해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 덕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 아들!" 안부 전화를 드릴 때마다 어머니는 한결같이 저를 맞아주십니다. 어린 날에는 부담으로 다가왔던 그 말이, 실은 어머니가 세상을 다해 보내는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제가 종이책을 준비 중이라 말씀드렸을 때도, 어머니는 세상 가장 기쁜 일처럼 축하해주셨습니다. 저를 키운 건 8할이 책인 줄 알았으나, 그 모든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거대한 우주의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책에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모든 학습 의욕을 잃어버린 소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섯 과목에서 A를 받았음에도, 단 하나의 B를 지적받는 순간 소년의 세상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라고 말해주었다면, 소년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부모의 인정만큼 아이에게 강력한 동력은 없습니다. 집에서 채워지지 못한 인정의 욕구는 아이를 밖으로 내몹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또래 집단의 인정에 목숨을 거는 이유입니다.


축하라는 건 꼭 마라톤 결승라인과 같아서 축하받지 못한 레이스는 결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가 끝이 아닌 건가?’ ‘아직 많이 남은 건가?’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태수



100점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70점에서 80점으로 나아간 아이의 노력이 있다면, 그 10점의 성장을 온 마음으로 축하해줄 때 아이는 90점, 100점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칭찬에 자만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오히려 칭찬을 통해 눈부시게 발전할 뿐입니다.


오늘, 당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다정한 칭찬 한마디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고생했다.",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라고. 멋쩍은 미소 뒤에, 분명 한 뼘 더 자라난 마음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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