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워해도 괜찮다는 걸 깨닫기까지

by 정상가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모든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것을. 태수 작가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에서 본 문장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람을 싫어해도 괜찮아"라는 걸 배우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고.


처음엔 이상했다. 거부감마저 느껴졌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미움받고 싶지도 않으니까. 교육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아이들을 보며 확신하게 되었다. 매년 100여 건의 상담 중 80%가 친구관계 때문이었다. 사춘기가 되면 또래의 영향력이 부모나 교사보다 커진다. 그래서 더욱 복잡해진다.


아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가 있어도 참는다. 진짜 친한 친구 한 명 때문에 그 그룹을 떠날 수 없어서다. 집에서 부모님도 "친구는 많이 사귀어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간다"며 참으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모든 관계가 소중할까?


오히려 반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래야 정말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사람을 싫어해도 괜찮다. 소중한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서."
- 태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학창 시절 나도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휘둘렸다. 적은 수의 사람과 깊게 지내는 게 편했는데도 두루두루 원만한 사람이 되려 애썼다. 피곤했다. 성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사랑하는 가족, 진짜 소중한 친구에게 집중할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함께 있을 때 편하고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했다. "친구를 위해 친구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진정한 친구이다."


우리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친구를 찾으려면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어떤 사람과 함께할 때 편안한지, 반대로 어떤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게 좋은지 말이다. 이건 이기적인 게 아니다. 현명한 선택이다.

학교에서 나는 '같은 반 친구들'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냥 '같은 반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우연히 같은 공간에 있을 뿐이니까. 30명이 넘는 과밀학급에서는 마음 맞는 친구를 찾기 쉽지만, 19명의 소규모 학급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말한다. 혼자는 외롭지만, 마음 맞지 않는 친구에게 끌려다닐 필요는 없다고. 인간관계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그 소중한 에너지를 의미 있는 사람을 위해 사용하자. 아이들도 이런 지혜를 배웠으면 좋겠다. 억지로 맞추려 하지 말고,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면 어떨까.


Image_fx (18).jpg AI로 생성한 삽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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