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 우리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가치 중 하나로 여겨지는 말입니다. 저 또한 얼마 전까지 그 말을 굳게 믿으며, 두 개의 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16년 차 초등 교사로, 집에서는 7년 차 남편이자 6년 차 아빠로 말이죠. 무대 위 배우가 역할을 바꾸듯,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색한 연기는 늘 삐걱거리기 마련입니다. 학교에서는 좀처럼 웃지 못하고 쉽게 날이 서는 교사였고, 집에서는 한없이 다정하고 너그러운 아빠였습니다. 두 모습의 간극이 저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가면을 쓴 채 연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으니까요.
삶에서 일을 별개로 여기는 것은 인생의 1/2 이상을 버리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같다.
<인생의 컨닝페이퍼>, 박종경
박종경 변호사님의 이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일과 삶이라는,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는 개념을 억지로 나누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의 저와 집에서의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두가 온전한 ‘나’였습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제 일상과 삶을 철저히 숨겼습니다. 교사라는 정체성이 글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교사도, 남편도, 아빠도, 블로거도 모두 제 삶의 소중한 일부라는 것을요.
나는 일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삶에는 칼로 무를 자르듯 명확히 나눌 수 없는 개념들이 많다. 특히 일은 삶에서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일은 삶이고 삶은 곧 일인 것이다.
<인생의 컨닝페이퍼>, 박종경
"일은 삶이고, 삶은 곧 일이다." 이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신기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삶이 끊어지지 않고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자, 학교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내 아이에게 말하듯 학생들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내 가족을 대하듯 동료들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분리되었던 두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며 비로소 온전한 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문득 학창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3년이나 입시 학원을 다녔지만 원하는 곳에 가지 못했던 이유. 저는 공부를 '내 삶'과 분리된, 억지로 해야만 하는 벌칙으로 여겼습니다. 공부하는 나를 인정하지 않았으니 잘 해낼 리가 없었죠.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공부하는 시간을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하기 싫은 고역이 아닌 성장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워라밸은 매력적인 환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과 삶, 공부와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일하는 나도, 공부하는 나도, 학교 밖의 나처럼 소중한 ‘나’ 자신입니다. 그 모든 순간을 온전히 끌어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최선을 다할 이유와 마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