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김종원 작가님의 이 한마디가 오랫동안 내가 발표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깨뜨렸다. 수천 명의 사람 앞에서도,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도 기쁠 수 있다는 그의 말. 그 이유는 더 많은 이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작년, 야심 차게 발표 노하우에 대한 전자책을 쓰기 시작했다. 나름의 경험과 지식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리라는 순진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원고는 미완으로 남았다. 내 이야기가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생각, 더 새롭고 극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발표를 '잘하는 법'의 함정에 빠져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발표를 떠올리면 화려한 언변과 세련된 슬라이드를 먼저 그린다. 무대 위에서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청중을 압도하고, 발표가 끝난 뒤 쏟아지는 박수갈채를 상상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그것은 발표의 껍데기일 뿐이었다.
"이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것인가?"
신경원 작가님의 이 질문은 발표의 무게중심을 '나'에게서 '듣는 사람'에게로 옮겨 놓는다. 내 말이 얼마나 유창한지, 내 자료가 얼마나 멋진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내 발표가 듣는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어떤 긍정적 변화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는가이다.
이 관점을 깨닫고 나니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왜 그토록 긴장했는지, 왜 발표가 끝나면 늘 아쉬웠는지. 모든 초점이 '잘 보이고 싶은 나'에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평가받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목소리는 떨리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하지만 발표의 목적이 '도움'과 '변화'가 되는 순간, '나'는 무대 뒤로 사라진다. 그 자리를 '청중'이 채운다. 그들의 눈빛을 보며, 그들의 고민을 헤아리며,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만 몰두하게 된다. 김종원 작가님의 말처럼, 그 순간에 떠는 것은 사치다. 주어진 시간 동안 한 마디라도 더 전해야 하니까.
돌이켜보면 대학교 시절, 나도 모르게 이 원칙을 따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할까만을 고민했다. 듣는 사람이 보기 편한 슬라이드를 만들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논문과 책을 파고들었다. 연습한 적은 없지만, 늘 메시지가 머릿속에 있었기에 말은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건 '나'를 위한 발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발표였기 때문이다.
발표는 나를 뽐내는 자리가 아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나누어 누군가의 삶에 작은 울림을 주는 자리다. 말이 조금 서툴러도, 목소리가 떨려도 괜찮다. 그 안에 진심 어린 도움이 담겨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발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