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리고 싶은 정체성으로 타인을 도와줄 수는 없는 법이다.
렘군, <아웃풋 법칙>
이 문장이 마음에 박힌 어느 날이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꾸준히 내놓기 위해 시작했던 글쓰기 앞에서, 저는 자주 길을 잃고 두려워졌습니다. 제 글이 과연 누군가에게 가닿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표가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습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제가 만들고 있는 작은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불쑥 꺼냈습니다. 정체성에 대한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작은 결론이었습니다. 어째서 그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 숨겨진 마음의 여정을 오늘 이 글에 담아보려 합니다. 저처럼 자신의 이름 앞에서 망설여 본 적 있는 분들에게 작은 위로와 공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년부터였을까요, 십수 년간 몸담았던 초등 교사라는 역할이 유독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 갑자기 찾아온 감정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외면하고 있던 한계가 둑을 넘듯 밀려온 것이겠지요.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확신이 없었지만, 고민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기에 일단 걷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숲속을 하염없이 헤맸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어 책을 읽었습니다. 저의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리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장은 좀처럼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행간에 숨겨진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에 진도를 나갈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번의 독서로 글의 정수를 뽑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독서를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다 한 코치님을 만나 책 읽기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걷어낼 수 있었습니다. 배움은 또 다른 배움으로 이어졌습니다. 확신이 없는 마음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잊고 싶어 끊임없이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인풋의 시간으로 불안을 잠재우려 애썼습니다.
그 무렵, 종이책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전에 발표에 관한 전자책을 쓰다가 중도에 포기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 내용이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까,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자기 계발서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온 힐도, 토니 로빈스도 아닌 제가 무슨 권위로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님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참 우스운 일입니다. 불과 1년 전까지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교직을, '16년 차 초등 교사'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으니까요.
원고를 다듬다 모든 걸 뒤엎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바로 그때, 저 문장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내가 버리고 싶은 정체성으로 타인을 도와줄 수는 없는 법이다."
코치님은 제게 끊임없이 아웃풋을 권하셨습니다. 덕분에 유튜브도, SNS도 시작했지만 때로는 버거웠습니다. 누군가의 기대 속에 살고 있지만, 그 기대가 정작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멈춰 서서 고민했습니다. '16년 차 초등 교사'라는 타이틀을 떼어내면, 내게는 무엇이 남을까.
문득 요즘의 제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작년과는 180도 달라진 하루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작년의 저는 7시 반에도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피곤에 절어 있었습니다. 피곤은 짜증을 낳았고, 감사는커녕 불평과 불만이 입에 붙어 살았습니다.
그런 제가 이제는 매일 아침 눈을 감고 명상을 합니다. 전문적인 기술은 모르지만, 그저 조용히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삶의 걱정과 불안이 잠시나마 멀어집니다. 손으로 긍정 확언을 씁니다. 며칠 째 첫 문장은 "나는 감사한다."입니다. 작년과 다른 오늘을 살 수 있음에, 그저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를 글로 새깁니다. 말로 뱉는 감사와는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이 모든 변화는 일찍 일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가능했습니다. 과거 실패했던 할 엘로드의 '미라클 모닝'이 아니었습니다.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책에서 본 대로, 그저 행동했기에 얻은 선물이었습니다.
정체성은 변합니다.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제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아침의 루틴입니다. 제가 느낀 이 행복을, 이 긍정적인 변화를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새로운 정체성을 '사람들이 예전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자신의 감정을 돌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으로 정했습니다. 16년 차 초등 교사가 아닌, 루틴 전문가 '정상가치'로 말입니다. 이 이름 또한 언젠가 바뀔 수 있겠지요. 제가 더 성장하거나, 제 안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면 말입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왕 실패한다면, 빠르게 실패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빠르게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준비-발사-조준"의 원칙처럼, 일단 시작하고 수정해가려 합니다. 오늘 제 글을 읽으신 당신도, 잠시 멈춰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왜 글을 쓰는지, 왜 당신의 글을 다른 사람이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매일 글을 쓰는 행위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