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에 열에 여섯은 사는 곳과 누구의 부모인지를 먼저 밝히곤 합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집에선 '◯◯맘'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습니다. 아이가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제 아내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녀의 하루는 온통 아이를 축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예전의 나는 없고, 엄마로서의 나만 남았어. 엄마는 원래 이래."
언젠가 아내가 무심코 뱉은 그 말을 저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빠라는 역할의 무게가 엄마와는 사뭇 다른 까닭이었을 겁니다. 그 말의 근원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 것은 처갓집에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장인어른께서 장모님을 제 아내의 이름을 넣어 "◯◯ 엄마"라고 부르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제 아버지 또한 누나의 이름을 넣어 어머니를 "◯◯ 엄마"라고 부르셨습니다. 두 분 모두 고유한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 ‘자기’소개인데,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여전히 자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렘군, <아웃풋 법칙>
어쩌면 그 영향이었을까요. 저는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줄곧 아내의 이름을 부릅니다. 아내는 제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저는 아내가 글을 쓰며 자신을 표현하길 바랐습니다. 블로그에 생각을 쏟아내며 저 자신이 성장했기에, 이 좋은 경험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권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아내는 손사래를 쳤지만, 실은 학창 시절 글짓기 상을 휩쓸고 저보다 먼저 아이의 육아 일기를 써왔던 사람입니다. 다만 그 기록은 세상과 소통하는 블로그가 아닌, 책으로 만들어주는 육아 일기 앱에 머물렀습니다. 지금도 그 결과물은 책장에 잘 꽂혀있습니다.
그 기록이 블로그에 쌓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첫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생생한 경험은 수많은 초보 부모에게 더없는 위로와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작가라는 새로운 길이 열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록의 형태가 만드는 작은 차이입니다.
저는 아내가 엄마나 아내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가 다른 역할에 소홀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아이가 독립한 '나중'에 나를 찾겠다는 다짐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엄마로서의 삶과 나 자신의 삶,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길을 만들어가기 마련이고, '◯◯엄마', '◯◯아빠'라는 호칭은 무의식중에 스스로의 한계를 설정하게 만듭니다.
이제 와서 부모님의 호칭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바꾸면 됩니다. 부부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이름 속에는 한 사람을 향한 온전한 인정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내에게 "오빠"라고 불러달라 청했습니다. 제 이름을 자연스레 붙여 부를 수 있으니까요. 저 또한 아내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줍니다. 결혼 후 3년 넘게 쓰던 '여보', '자기'라는 호칭은 이제 거의 쓰지 않습니다. 덕분에 마트에서 큰 소리로 "자기야!"라고 외쳤다가 주변 사람 여럿을 돌아보게 만들었던 민망한 경험도 더는 없습니다. 이제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 오직 아내만이 저를 향해 돌아봅니다.
오늘, 사랑과 감사를 담아 배우자의 이름을 한 번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상대의 기분 좋은 놀라움이 당신의 하루를 웃음으로 채워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