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무례함은 당신과 관계가 없다." - 멜 로빈스
우리는 종종 관계 속에서 타인을 바꾸려 애쓴다. 연인의 무심한 침묵에 조바심을 내고, 자녀의 엇나가는 행동에 잔소리를 퍼붓는다. 변화는커녕 더 깊은 갈등의 골만 파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쉬이 그 노력을 멈추지 못한다. 진정한 변화는 언제나 대상의 내부에서 시작되는 것이지, 외부의 압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 또한 그랬다. 20대 초반, 썸 타던 그녀의 연락이 끊겼을 때의 일이다. 저녁 이후 감감무소식인 휴대폰을 붙들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불안감은 곧 집착으로 변했다. 한 번, 두 번 걸던 전화는 어느새 50통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다음 날 그녀는 차에 휴대폰을 두고 왔다는, 당시에는 핑계처럼 들렸던 이유를 대며 내게 ‘무섭다’고 말했다. 관계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만약 그때 내가 그녀를 그저 내버려 둘 줄 알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시간이 흘러 비슷한 실수는 반복됐다.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과 크게 다툰 후였다. 그녀는 모든 연락을 끊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예약을 취소하며 위약금을 무는 내내, 나는 그녀의 잘못만을 곱씹었다. 카카오톡의 ‘1’은 사라졌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전화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상대를 바꾸려 했던 나의 시도는 또다시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멜 로빈스는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1년이 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사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초등 교사가 된 후에도 나의 실수는 이어졌다. 아이들을 바꾸고 싶었다.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화를 내며 그들의 행동을 교정하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고,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아침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 어떤 말도, 어떤 노력도 아이들 마음 깊은 곳을 움직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변화의 씨앗은 아이들 내면에 이미 존재하며, 내가 할 일은 그것이 싹을 틔우도록 방해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내버려두기’는 방임이나 방치가 아니다.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은 순간 ‘공부하라’는 말을 들으면 의욕이 꺾이는 것처럼,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깨달을 기회를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의 고유한 세계를 인정하고, 그의 시간과 속도를 믿어주는 일이다. 연인에게도, 헤어질 수 없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변화는 항상 내부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그저 그 여정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도록 지켜봐 주면 된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만날 수많은 선택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자율성을 선물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자 교육이었다. 아이는 혼자서도 충분히 잘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