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믿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

by 정상가치

'내버려두면 정말 괜찮을까?'


며칠 전 아이를 그저 지켜보는 것에 대한 글을 썼을 때,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런 의문이 자리 잡았을 겁니다. 혹시 이게 부모의 역할을 소홀히 하는 것, 심지어 방임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말입니다. 저 역시 글을 쓰면서도 그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멜 로빈스의 <렛뎀 이론>을 다시 펼쳐 들고서야 제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진정한 '렛뎀'은 그저 내버려두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일시적인 평안을 얻을 뿐, 근본적인 상황을 개선하지 못합니다. 멜 로빈스가 '내버려두자'와 함께 '내가 하자'의 필요성을 그토록 힘주어 말했던 이유입니다.


교실 칠판 한쪽에 "내버려두자"라고 써 붙인 뒤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생존 수영 교육을 가던 날, 버스는 이미 도착했고 다른 반과 함께 출발해야 하는 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생 두 명이 실내화를 신고 현관까지 내려온 겁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다시 올라가 신발을 갈아신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기다리던 한 학생이 툭 던지는 말이 제 허를 찔렀습니다.


"선생님, 이럴 때 '내버려두기'가 필요한 것 같은데요."


제가 스치듯 언급했던 이론을 이토록 완벽한 순간에 적용하는 아이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뛰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른들이 해야 할 역할이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하자'입니다. 아이들을 그저 어린 존재로만 대하는 대신, 그들의 가능성을 믿고 지원하며 경청하고, 나아갈 길을 안내하는 역할 말입니다. 여섯 살 제 딸조차 '아기'라는 호칭을 싫어합니다. 물론 사랑스럽다는 의미를 담은 표현이지만, 때로는 제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존재로 여기는 저의 시선이 담겨있을지도 모릅니다.


학급의 J라는 학생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네 명의 단짝 무리에서 겉돌기 시작한 J의 어머님께서 걱정 가득한 연락을 주셨을 때, 저는 섣불리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쪽을 택했습니다. J는 단단하고 씩씩한 아이이니 믿고 기다려달라고 어머님을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J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이번 주부터는 다시 원래의 단짝들과 웃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 누구의 개입도 없이, 아이는 스스로 관계의 어려움을 헤쳐나가 우정을 다시 쟁취해낸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의 인생이라는 무대 위 주인공이 아닙니다. 아이가 스스로 빛날 수 있도록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고, 막이 오르면 무대 뒤에서 묵묵히 믿고 기다려주는 조연이자 스태프입니다. 아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부족해 보일 때 "내버려두자"라는 말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아이의 눈빛이 도움을 청할 때, 기꺼이 "내가 하자"고 말하며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멜 로빈스가 말한 '렛뎀 이론'의 완성일 겁니다.


부모는 아이의 긴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옆자리를 지키는 페이스 메이커와 같습니다. 때로는 물을 건네고 때로는 함께 속도를 조절하며, 끊임없이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존재. 오늘도 아이와 함께 그 멋진 여정을 완주하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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