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자>라는 SF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니 좋아했던 웹소설과 무엇이 다른가.
웹소설도 SF소설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자신이 만든 세계에 독자를 초대해서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어쨌든 현실에서 벗어나서 작가의 초대를 받는 것은 즐겁다.
그가 만든 세계에서 실컷 유희를 즐길 수 있으니까.
웹소설은 보통 독자를 즐겁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왜냐하면 그래야 다음 편을 결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컷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든다.
지식의 공백을 활용해서 다음 편이 미치도록 궁금하게 만든다.
그래야 사람들이 궁금증에 목이 메어 계속 결제를 하니까.
소설은 다르다.
이미 완결이 났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이미 결제가 끝났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결제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책을 사고, 환불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아니 가능한지조차 모르겠다.
뭔가 책 자체는 신성한, 그래서 돈을 주고받지만, 돈에 구애되지 않는 느낌을 주니까.
암튼 그래서 소설은 반드시 독자를 즐겁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웹소설보다 비싼 값을 지불하고, 상대적으로 무거운 종이책을 구매할까?
그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상에 파묻혀 있으면 잊게 된다.
계속 반복되는 매일이 사고력을 죽인다.
그래서 더 이상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메타 인지가 불가능해진다.
어떤 게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이 사라진다.
그러니 순간에 드는 감정에 휩싸여서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한다.
그리고 계속 반복한다.
그동안 매정하게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이 것을 막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소설이다.
<수확자>라는 소설을 읽기 전에는 죽음과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물론 영성 책을 통해서나 자기 계발 책을 통해서 막연하게 인식은 했다.
하지만, 그게 끝.
당장 내일 내가 일어나지 못한다거나, 가족이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소식을 기대하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면, 난 인생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지금 읽는 책에서도 2042년 이후의 죽음이 정복된 사회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들의 말과 행동, 생각을 보면서 흠뻑 빠져든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작품 덕분에 나는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일상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그렇게 내밀하게 볼 수 없으니까.
그래서 가끔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다.
나라면 어떻게 할지 현실에서 선택할 때도 더욱 현명하게 할 수 있다.
바둑이나 장기도 그렇지 않은가.
실제로 내가 두고 있을 때보다 훈수를 두려고 할 때 더 잘 볼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확자>는 좋은 책이다.
과하지 않게,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교훈 1>
평소에 접하지 않는 장르의 책은 내 외연을 확장시킨다.
<교훈 2>
<수확자>는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