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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통 Jan 13. 2019

멘토를 만나다 (2)작지만 큰 용기-로비에서의 20분

[때로는 작은 용기가 인생을 바꾼다]

2003년 호암아트홀에서 공연이 열린 날도 어김없이 공연장을 찾았다. 멋진 연주를 감상하고 나왔는데 뭔가 허전했다. 평소에는 공연이 끝나면 사인회가 열리곤 했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사인회 일정이 없었다. 사인회가 없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발길을 돌렸고 관객들로 꽉 차있던 로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텅 비었고 나와 친구만이 남았다. 스태프에게 연주가들이 언제, 어느 쪽으로 나오는지 물었으나 대답해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이사오 사사키에게 공연이 정말 좋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민이 들었다.


'언제 나올지, 어디서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냥 기다리는 건 시간낭비가 아닐까?'

'만난다는 보장도 없는데 기다렸다가 못 만나면 어떡하지?'

'사인회도 없는데 그냥 갈까?'

 

 고민 끝에 비록 만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한번 기다려보기로 했다.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웃으면서 이사오 사사키와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관객들이 돌아간 후 텅 빈 로비에서 기다리는데 힐끔힐끔 쳐다보는 스태프들의 눈빛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사오 사사키는 다른 출구를 이용해서 이미 떠난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갈까?’


고민이 됐지만 이왕 기다린 것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 때, 왠지 이사오 사사키가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하던 문에서 인기척이 났다. 천천히 돌아가는 문고리의 모습은 10년 넘게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마치 은사를 찾아주는 TV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부분 같았다. 감동적인 음악이 흐르면서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만남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장면 말이다. 그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이사오 사사키였다. 나는 다가가서 멋진 공연이었다고 말했고 CD를 건네면서 사인을 부탁했다. 주위를 둘러보고 나와 친구만이 남아있는 것을 본 이사오 사사키는 흔쾌히 사인을 해주면서 나에게 영어로 물었다.


"Are you a musician?” 


기쁜 마음으로 사인을 받으면서 대답했다.


"뮤지션은 아니지만 당신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로비에는 나와 친구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사인회와는 다르게 여유를 가지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어떤 곡을 좋아하는지, 오늘 공연은 평소와 스타일이 약간 달랐는데 어땠는지에 대해 물어보셨고 나는 서투른 일본어로 느낀 점들을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사오 사사키는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줘서 영광이라며 고맙다고 말하셨다. 

 

[WOW액션] 만난다는 보장이 없었지만 한번 기다려보기로 결정했고 기다리는 도중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포기하는 대신에 조금 더 기다렸다. 그 결과 이사오 사사키와 대화를 나누고 사인까지 받을 수 있었다. 언제, 어느 출구로 나올지 모른다는 대답을 듣고 그냥 돌아섰다면, 기다리던 도중에 의구심이 들었을 때 돌아갔다면 이제부터 쓰는 이야기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평상시에는 그냥 흘려버리곤 하는 20분이라는 시간, 아무도 없던 로비에서 기다렸던 작지만 큰 용기가 내 인생을 크게 바꾸어 주었다. 

 



시간이 흘러 2004년 2월, 이사오 사사키와 이루마의 발렌타인데이 공연이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다. 언제나 그랬듯이 공연장을 찾아 연주에 귀 기울였고 공연이 끝난 후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마침내 차례가 되어 이사오 사사키에게 CD를 건네면서 인사를 하자 문득 나를 올려다본 이사오 사사키의 표정이 바뀌더니 무엇인가 말하려고 했다.


'나를 기억하신 건가?' 


하지만 뒤에 기다리는 관객들이 많아서 그대로 떠밀려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했던 걸까? 사인을 받았으니 그냥 갈까? 아니야, 마지막에 인사라도 한번 더하고 가자.'


와 같은 수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오갔다. 


사인을 받았지만 어차피 기다린 김에 사인회가 끝날 때까지 로비에 남아있기로 했다. 공연에서 얻은 좋은 느낌을 되새기면서 기다렸더니 시간이 금방 갔다. 마침내 사인회가 끝났고 마지막 한 사람에게까지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준 후에 돌아선 이사오 사사키의 뒷모습에 'good bye' 라고 외쳤다. 순간 그가 뒤를 돌아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웃으면서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아이리멤버유.’ 그 말 한마디에 너무나 행복했다. 이사오 사사키가 날 기억하는구나. 너무나 기뻤다. 저번 공연 때 끝까지 남아서 인사를 한 것이 인상에 남은 것일까? 간단한 인사 후 이사오 사사키는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옆에서 함께 움직이는 스태프가 너무 부러웠다. 이사오 사사키와 같이 일을 하다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 백스테이지에 가봤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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