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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통 Jan 13. 2019

멘토를 만나다 (4)앨범녹음에 초대받았는데 일을 하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기회가 열린다]

일본 여행에서 돌아온 후 대학로에서 반년 동안 해왔던 개그 공연을 그만두었다. 출연자들의 계약 문제로 극장이 장기간 문을 닫은 상황에서 고민하다가 복학하기로 결심했다. 다음 학기가 시작할 때까지 4달 반의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가장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래, 짧은 기간이지만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해서 단기간에 최대한 일본어 실력을 늘리자.’ 


그때까지는 일본어로 간단한 의사표시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더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4달 반 동안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2004년 4월 중순부터 신주쿠에 있는 일본어학교를 다니면서 사사키씨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공연장을 찾았다. 하루는 사사키씨의 일을 돕고 있는 아라이씨를 알게 되었는데 7월에 새 앨범 녹음이 있다고 하셨다. 


'아! 앨범 녹음에 가면 사사키씨의 신곡을 들을 수 있겠구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직접 가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분명히 극도의 집중을 요하는 작업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번째 스테이지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아라이씨가 다가와 사사키씨가 새 앨범 녹음하는데 나를 초대했다고 말해주었다. 녹음하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신곡을 가장 먼저 들어볼 수 있다니! 너무나 기뻤다. 


상상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아마 글을 읽으면서 믿지 못하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이미 일어난 일을 글로 쓰는 나도 가끔 믿기 힘들 정도이니까.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고 행동했더니 가슴 뛰는 일이 일어났다. 초대해 주신 사사키씨와 좋은 소식을 전해주신 아라이씨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

 

6월초 어느 날, 일본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싸고 있는데 아라이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공연스케줄 자료를 줄 테니 한번 사무실에 오라고 하셨다. 언제 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당장 오늘 가겠다고 말하면 너무 한가해 보이지 않을까?‘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고 숙제는 밤에 해도 상관없으니 미루지 말자고 생각했다. 오늘 가도 괜찮은지 물었더니 아라이씨는 껄껄 웃으시면서 좋다고 하셨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킹레코드가 위치한 에도가와바시역으로 향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후에 동네 벤치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은 후 약속시간에 맞춰서 기쁜 마음으로 찾아갔다.




약속시간에 맞춰서 킹레코드 건물에 도착했다. 1층에는 수 많은 소속 아티스트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Seven Seas Record 사무실로 찾아가서 업무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아라이씨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미팅 중이니 잠시 기다리라는 대답을 들었다. 짧은 어학연수 기간 동안 최대한 일본어 실력을 향상시켜야 했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직원들이 전화 받는 방법이나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면서 일본어 공부를 했다. 


10분 정도 지난 후에 다른 가수와 미팅을 마친 아라이씨가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아라이씨께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하고 연락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 드렸다. 공연스케줄과 앨범 녹음 일정표를 주시면서 마침 내일이 첫 녹음이라고 하셨다.


 '아! 아까 전화 받았을 때 다른 날로 미뤘다면 첫 녹음을 놓쳤겠구나.'


내일 보러 가도 되는지 물어봤고 아라이씨가 물론이라고 답하셨다. 집합장소와 시간을 메모한 후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무슨 일이든지 미루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하기로 결심했으면 미루지 말고 바로 실행하자. 

 

다음 날 일본어 수업이 끝난 후 바로 스튜디오로 향했다. 집합장소에서 사사키씨와 아라이씨를 만나 후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다시 한번 인사를 드렸다. 가수 보아도 녹음한 적이 있다는 대규모의 스튜디오에서 앨범녹음이 진행됐다. 사사키씨의 신곡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설렜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기회이기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첫 곡의 녹음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곡을 한 곡씩 들을 때마다 너무나 행복했다. 연주를 주의 깊게 들으면서 한편으로 나로 인해 녹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행동 하나 하나에 신경을 썼다. 진동소리라도 방해가 될까 봐 전화기를 꺼놓았고, 숨도 조심해서 쉬고, 걸을 때도 앞꿈치로 살금살금 걸었다. 


앨범 녹음은 처음이었기에 모든 것이 새로웠다. 앨범제작 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사키씨가 연주를 마치고 스튜디오에 돌아오실 때 스튜디오의 중간 문을 열어드리고 멋진 연주였다고 말씀 드렸다. 직접 열어보니 중간 문의 무게가 상당히 무거웠기에 그때부터 사사키씨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재빠르게 문을 열어드렸다. 


문을 열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을 계기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자발적으로 행동했다. 스태프의 커피가 떨어지면 직접 커피를 따라주었고 중간에 간식을 먹고 나면 깨끗하게 치웠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동했기에 전혀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지 감사한 마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아주 작은 일을 한 것뿐인데 아라이씨와 다른 스태프들이 녹음 구경할 수 있게 손님으로 초대했는데 마치 어시스턴트같다며 웃으셨다. 스스로 움직였던 열정적인 자세가 마음에 드셨는지 녹음이 끝날 때쯤에 다음 녹음이 있을 때 또 와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셨다. 또 다른 신곡을 들을 수 있다니! 너무나 기뻤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실행했더니 진심이 전해저서 또 다른 기회로 이어졌다. 문을 열어드리거나 커피를 준비하고 간식을 먹은 후 정리 하는 행동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좋아해서 하는 일이었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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