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와 조언으로 나를 성장시켜주는 멘토]
그렇게 첫 녹음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녹음 작업에 찾아갔다. 녹음이 있는 날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 근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재빨리 먹은 후에 도쿄 모노레일에 올라탔다. 오오이케이바죠역에서 사사키씨와 아라이씨를 만난 후에 10분 정도 걸어서 스튜디오까지 같이 가고는 했는데 지금도 한여름 햇살 아래 스튜디오로 향하던 풍경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와 등 뒤로 주르르 흐르는 땀, 그리고 내 손에 들려있는 봉투 속에 들어있는 음료수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녹음이 시작되면 한 곡 한 곡 귀를 기울여서 들었다.
신곡을 들으면서 그저 행복했다. 사사키씨는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곡을 연주하신 후에 나에게 어떤 제목이 좋을지 묻기도 하셨다. 시노자키씨의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느낌의 곡으로 가제는 ‘영화음악’이었다. 나중에 Framescape라는 제목이 지어진 그 곡을 들을 때마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녹음에서 세상에서 제일 처음으로 멋진 곡들을 수 있었던 그때가 생각난다. 4달 반 동안의 일본 어학연수 생활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녹음이 끝나면 다 함께 밥을 먹으러 가고는 했다. 사사키씨는 앞으로 많은 일들을 겪게 될 텐데 지금의 모습 잃지 말고 계속해서 바른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얘기하셨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초심을 잃지 말고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긴자에서 공연이 있던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간식거리를 들고 갔는데 사사키씨는 이미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따로 선물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친구라니! 믿겨지지가 않았다. 이때부터 사사키씨께서 사적인 자리에서나 콘서트에서나 사람들에게 나를 친구라고 소개시켜주셨다. 식사를 마친 후에 긴자 거리를 걸었다. 사사키씨와 친구가 될 줄은, 그리고 같이 긴자 거리를 걷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하니 사사키씨는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해주셨다.
그렇게 한 달 넘게 진행된 사사키씨의 앨범제작이 완전히 끝난 후에도 공연이 있을 때마다 찾아갔다. 사사키씨의 음악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사사키씨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초급 수준이었던 일본어 실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공연이 끝나면 회식자리에도 데려가 주시고 음악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바이올린에서 피아노로 전향하게 된 계기, 젊었을 때 좌절했던 경험, 미국 유학 시절에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하고 싶은 일에 마음껏 도전한 일, 실수하고 고생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해보고 싶은 일에 도전하며 많은 경험을 하되 젊었을 때 일찍 성과를 내기 위해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조언해주셨다.
공연이 없을 때도 후지사와에 위치한 집에도 초대해주시고 평소에 자주 가시는 음식점에도 데려가 주셨다. 일본에서 돌아오기 전에는 사사키씨와 아라이씨, 칸초네 가수인 마츠모토 준코씨가 송별회를 열어주셨다. 일본에서 보낸 4달 반 동안 사사키씨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찍은 사사키씨의 사진을 인화해서 앨범을 만들어 선물했다. 앨범 첫 장에는 사사키씨에게 짧은 글을 적었다.
"존경하는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그 존경하는 사람이 외국인일 경우엔 더 어렵기 마련인데 사사키씨의 앨범작업에 초대도 받고 사사키씨의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합니다.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두근거림 없이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며 방황하던 나에게 존경하던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와의 아름다운 만남은 큰 영향을 끼쳤다. 사사키씨의 음악을 알게 된 후 잃어버렸던 열정을 되찾았다. 사사키씨께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음악뿐만 아닌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다. 사사키씨의 ‘참으로 진실된 청년’이라는 칭찬을 듣고 한동안 잃었던 자신감과 열정을 찾을 수 있었다. 책에서만 접해왔던 '조언과 경험의 기회를 베풀어주는 멘토'를 만났다. 호암아트홀 공연 후 아무도 없던 로비에서 기다렸던 20분. 그 20분이 내 인생을 바꿔주었다.
연락을 한다고 그 사람이 나의 멘토가 되어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그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이왕이면 친필편지를 쓰자. 최근에 친필편지를 받은 게 언제인지 생각해보라! 이메일이 넘쳐나는 지금이야말로 친필편지의 힘이 발휘된다. 편지를 쓰는 것이 반드시 어떤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는다. 편지 한 통으로 그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사사키씨가 말씀하셨듯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친하게 되고 싶다는 생각에 너무 부담스럽게 접근하지 말자. 내 경우엔 순수한 마음으로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약한 연결이 이어지면서 사사키씨와 가까워졌다. 만약 처음부터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에 서둘렀다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직접 멘토를 만날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인터뷰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간접경험을 하자.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인 마지막 강의의 저자 랜디포쉬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고 내 삶에 변화가 생겼다. 나는 책을 읽거나 유투브나 본인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강연을 주로 찾아보고는 한다. 이 방식으로 스티브 잡스, 파울로 코엘류, 세스 고딘, 다니엘 핑크, 마리아 슈라이버, 앤서니 라빈스, 오프라 윈프리, 지그 지글러, 에크하르트 톨레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들의 책과 강연에서 영향을 받아서 의식이 바뀌었다. 책이나 강연 영상을 접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으므로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 어디서든 조언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