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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통 Jan 13. 2019

멘토를 만나다 (6) 이사오 사사키씨가 통역을 부탁하다

[완벽한 때란 없다. 일단 도전하기]

일본에서 4달 반 동안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2004년 2학기에 맞춰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1학년 1학기 때는 목표도 없고 학교 생활이 즐겁지 않았는데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새로운 경험을 한 덕분인지 마음자세가 바뀌고 열정적으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사사키씨의 앨범을 들으면서 그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좋아하는 외국어 과목과 배워보고 싶은 과목을 듣기 시작하자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학사경고를 받았던 1학년 1학기와는 완전히 달라진 즐거운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에 몰입한 덕분에 행복하게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삶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다



 하루는 처음 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시모시?'

아라이씨의 전화였다. 10월에 한국에서 콘서트가 있는데 그때 통역을 해줄 수 있는지 물으셨다. 원래 사사키씨의 통역 담당자가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일본 공연에 동행하게 되어 통역을 찾고 있는데 사사키씨가 나에게 부탁하면 어떻겠냐고 하신 것이었다. 


'사사키씨의 통역이라니! '


가슴이 두근거렸다. 꼭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곧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앨범제작 과정에서 어시스턴트와 같은 역할은 한 적이 있었지만 통역은 처음이다. 실수하면 어쩌나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전화를 끊고 생각을 해봤다. 정식으로 통역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실수를 할까 두렵기도 했고 실수했을 때 창피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처음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아직 해본 적이 없는데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어떤 일이든지 처음 시도할 때가 가장 힘든 법이다.  프로들도 처음에는 아마추어였다. 마이클 조던도 오프라윈프리도 짐케리도 모두 처음에는 서툴렀던 때가 있었다. 실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지 말자. 


1990년대에 인기를 얻었던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타케히코는 농구 유망주를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장학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두렵더라도 일단 부딪혀 보자. 도전하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다. 실패가 두렵다고 피한다면 스스로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실패한다고 해도 부족한 점을 알 수 있는 기회이다. 일단 도전하자.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부족한 부분은 연습하면 된다콘서트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준비를 제대로 한다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은 기간 동안 사사키씨의 통역을 할 때 나올만한 표현들을 미리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지금까지는 옆에서 관찰하는 입장이었다면 이번에는 리허설에서부터 콘서트까지의 과정에 참여하며 통역해야 했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오로지 통역 준비에만 집중했다. 당분간은 다른 일은 제쳐두고 이번 일정 동안 가장 빈번하게 쓰일 표현들을 익혔다. 단기간에 일본어를 마스터할 수는 없지만 공연 분야로 좁힌 후에 준비를 한다면 충분히 그 분야에 대해서는 의사 소통을 할 수가 있다피아노 관련 어휘를 찾아서 공부하고 리허설 때 필요하게 될 음향에 관한 표현을 익혔다. 인터넷을 통해서 공연 준비나 백스테이지의 상황이 다뤄진 글을 찾아 읽거나 공연 스태프가 블로그에 쓴 글 들을 읽어보고 모르는 표현이 나오면 사전을 찾아봤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면 대신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자. 완벽한 때란 오지 않는다.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도전을 포기하지 말자. 기간이 짧은 경우 오히려 집중해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짧은 기간 동안 효율적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2004년 10월 24일, 시월에 눈내리는 마을 콘서트 날이 다가왔고 사사키씨를 한국에서 만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팬의 입장에서 공연장을 찾았는데 이번에는 정식 스태프로 만나게 되다니!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콘서트가 열리는 연세대학교를 찾았다. 필요한 표현들을 미리 준비 해놓은 덕분에 무난하게 통역을 해낼 수 있었다.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고 공연이 끝나고 짐을 정리할 때 비로소 실감이 났다.


 ‘아, 이제는 나도 사사키씨와 함께 백스테이지에 들어가는 스태프가 되었구나!’


일본 어학연수 기간 동안 사사키씨 덕분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고 발전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한국에서 사사키씨의 공연을 옆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다행히 사사키씨가 내가 통역을 하는 것이 편하다고 하셔서 그 후로 내한 공연 때마다 통역을 하게 되었다.  




 사사키씨가 한국에 오실 때마다 일년에 2-3번 통역 역할로 함께 할 수 있었다. 공연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와의 인터뷰 그리고 앨범제작에도 참여했다. 일정을 소화하면서 자연스럽게 피아니스트 이루마, 해금 연주가 김애라, 베이시스트 전성식, 첼리스트 허윤정, 색소포니스트 손성재 선생님과 같은 각 분야의 뛰어난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음악뿐만 아니라 프로들이 일하는 자세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해금 연주가 김애라 선생님의 앨범과 사사키씨의 인사이트 앨범제작에 함께했고 2008년에 발매한 ‘프롤로그’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풀타임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작업이 끝난 날 사사키씨께서 말씀하셨다.


“이군이 없었다면 이 앨범은 없었다. 덕분에 너무나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고맙다.”


분에 넘치도록 부끄러웠지만 그동안의 피로가 싹 가셨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나로서는 돈을 내고서라도 하고 싶은 경험을 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사사키씨께서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드렸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다]


학교 수업과 사사키씨의 일정이 겹칠 때가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무 때나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기회였기 때문에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의 필기 노트를 빌려서 공부했다. 한번은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 하루 전에 통역을 의뢰 받은 적도 있었다. 이문세씨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번에도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다. 라디오 통역을 하면서 중학생 때 즐겨 들었던 조조할인을 부른 이문세씨도 만날 수 있으니 이번에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대학생활 중에 가장 보람을 느끼고 기억에 남는 것은 A학점을 받은 것 아니라 그때 아니면 못해봤을 다양한 경험들이다.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알 수 있다대학생활 내내 좋은 학점을 따는 것에만 매달리거나 목적이 불확실한 스펙쌓기에 올인한다면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 좋아하는 일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만다. 


불안한 마음에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스펙을 쌓는 마음이 이해가 가지만 회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졸업생의 스펙은 다 비슷해보인다고 한다. 직무와 관련없는 스펙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여태껏 공부에 치여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대학생일 때 많이 해봐야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무엇을 할 때 시간이 빨리 가는가? 자유시간에 무엇을 하는가? 관심 있는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보자. 사람들을 만나자. 이미 관심이 있는 분야의 일을 하고 있는 사회인에게 조언을 구하자.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일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자신이 열정을 가진 분야에 몰입해서 성취한 경험, 실패를 딛고 일어난 경험을 쌓자. 취업을 하든, 자격시험에 도전하든, 창업을 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도전할 때 큰 힘이 될 것이다.


녹화 당일,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PD님과 인사를 했다. 딱딱한 통역보다는 재미있게 통역 해달라고 하셨다. 같은 표현이라도 조금 더 재미있게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이문세씨가 오셨고 사사키씨와 인사를 나누실 때 사사키씨와 나의 인연이 언급되었다. 녹음이 시작되자 이문세씨가 내가 원래는 팬이었는데 지금 친구이자 통역을 하고 있다고 언급해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청취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부담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생방송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긴장이 좀 풀렸다. 게다가 사사키씨와 이문세씨 두분 모두 음악을 사랑하고 온화한 성격을 가지고 계셔서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통역을 할 수 있었다. 첫 멘트 통역을 잘 해내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마지막 곡을 연주할 차례가 왔다. 45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즐거웠다. PD님이 아주 잘했다며 나중에 일본어 통역이 필요하면 부르겠다고 하셨다. 어려워 보이는 일이라도 준비를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아라이씨의 전화를 받았을 때 아직은 실력이 완벽하지 않으니까, 혹시나 실수하는 것이 두려워서 거절했다면 앞으로 언급되는 수 많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한 때란 영원히 오지 않으므로 일단 도전하자. 통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어 실력이 급격히 향상되었다. 철저히 준비한 덕분에 성공했고 그 후에 이루마, 유희열,정지영, 이현우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더 많은 방송 경험을 쌓았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도전했기에 이 모든 것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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