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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통 Jan 13. 2019

멘토를 만나다 (7) 방송 울렁증을 연습으로 극복하다

[두려운 만큼 연습하면 할 수 있다]

2008년 12월, 사사키씨가 김동율의 포유에 출연하시는데 통역을 해줄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시험기간 2주전에 녹화가 있어서 시험준비에 부담이 가기도 했고 통역을 위해서는 전공 수업을 빠져야 했다. 하지만 일단 하겠다고 말을 하고 녹화 당일까지 열심히 준비하기로 했다. 수업 내용은 필기를 빌려서 혼자 공부하고 출석체크는 교수님께는 사정을 말씀 드린 후에 통역 확인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일단 하겠다고 말하고 남은 시간 동안 준비를 잘하자는 자세 덕분에 더 많은 것에 도전해볼 수 있었다


TV 프로그램은 처음이다. 확실히 라디오 프로그램보다 부담감이 컸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사사키씨와 MC, 소수의 스태프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지만 김동율의 포유는 MBC공개홀을 가득 채운 관객들 앞에서 녹화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큰 도전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문이 막히면 어떡하지?’ 


생각만해도 아찔했다. 무대 위에서 실패한다면 무엇보다 나를 믿어주신 사사키씨에게 죄송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못 들 정도로 부끄러울 것 같았다. 최악의 경우 앞으로 사사키씨의 방송 출연 통역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두려움에 대한 프레임을 바꾸자.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하자. 두려움이나 부담감을 아예 느끼지 않을 수는 없다.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지 말자. 두려움을 피할 것이 아니라 인정하자. 두려운 마음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막연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두려운 마음을 피하기보다는 실패했을 경우 악몽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두려움을 일단 인정한 후에 그것을 활용해보자. 계속 두려움에 빠져있을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인식한 후에 거기서 받는 부담감을 연습하는데 에너지로 사용하자. 두려움이 큰 만큼 철저히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말문이 막히는 상황이 두려운 만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준비하기로 했다. 라디오 통역 준비를 할 때보다 더 집중해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라디오 준비를 하면서 이 정도 준비했으면 열심히 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TV 통역을 앞두고서는 집중도도, 연습시간도 훨씬 늘어났다. 만에 하나 필요할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꼼꼼하게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두려움 덕분에 더욱 제대로 준비를 하게 되었다.


처음 콘서트 통역을 할 때도, 라디오 프로그램 통역을 할 때도 연습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통역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미리 연습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우선은 김동율의 포유를 찾아 봤다. 평소에 어떤 분위기인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를 유심히 지켜봤다. 몇 개의 에피소드를 보고나니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단순히 뜻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의 톤, 문장의 구성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통역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대신에 대화하듯이 통역해야겠다고 느꼈다. MC와 출연자들이 말하는 방식을 보고 따라서 해봤다. 


*그냥 보는 것과 소리를 내면서 따라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발표도, 면접도, 영어공부도 그 상황에 처해있다고 생각하면서 직접 소리 내면서 연습을 해야 효과가 있다. 이렇게 연습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게다가 돈이 들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도 했다. 사람들은 사사키씨의 연주를 보러 온 것이지 내가 통역하는 모습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나만 떨리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두렵고 긴장되는 감정에 휩싸이기보다 원래 이런 감정이 들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면서 한 발 뒤로 물러나서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관찰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성취해온 것들을 기억하며 이제까지 잘 해왔듯이 앞으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자. 똑같이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내 자세에 따라서 긴장이 덜해지거나 더해질 수 있다.


녹화 당일, MBC의 대기실에서 사사키씨와 한국어 인사 연습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리허설 시간이 됐다. 스테이지에 가보니 통역 의자도 같이 준비되어있었다. 이때부터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진짜로 TV에나가는구나!’ 내 의자와 마이크가 준비된 것을 보니 갑자기 실감이 났다. 속이 울렁거렸다. 이때부터 긴장하기 시작해서 물을 한 컵 두 컵 마시기 시작해서 결국 대기실의 생수통 반을 혼자 먹었다. 


사사키씨가 나에게 괜찮은지 물어보셨다. 긴장이 된다고 솔직하게 말씀 드렸더니 너무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하라고 말씀하셨다. 연습을 열심히 했지만 긴장한 탓에 시야가 좁아진 내게 가장 필요하던 조언이었다.


평소에 하던 것처럼 하자고 생각했다. 연습한대로 하자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연습한 것을 되새기며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이제 와서 피할 수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부담감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결국 내 손해이다. 어차피 해야 하는 것 즐기자는 생각을 가지고 무대 뒤로 갔다.

 


드디어 녹화가 시작됐다. 사사키씨의 첫 연주가 끝나고 김동율씨와 함께 무대에 올라갔다. 첫 멘트를 통역할 때는 너무 떨려서 목에서 양 울음 소리가 나왔다. 뱃속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정신차리자. 원래 긴장되기 마련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동안 연습한 것들을 생각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상황에 집중하자. 긴장이 되거나 두려움이 닥치면 일단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작은 성공을 경험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세계적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박지성 선수도 긴장될 때는 볼을 받고, 패스하는 기본적인 플레이에 하나씩 집중하면서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긴장을 풀었다고 한다. 다음에 통역해야 할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자 떨림이 조금씩 사라졌다. 양울음소리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TV 통역이 처음이었고 통번역 대학원과 같은 전문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아무래도 미흡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평소에 사사키씨 통역을 자주 해왔기에 익숙해져 있었고, 사사키씨가 멘트 중간 중간 내가 이해했는지 확인해주시는 배려를 해주셔서 많은 방청객들 앞에서 큰 실수 없이 통역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눈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렀고 무사히 통역을 마쳤다. 인터뷰를 마치고 마지막 연주곡을 무대 뒤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했다. 


떨리는 만큼 치열하게 준비한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나 자신도 한 단계 더 발전했다. 많은 카메라와 방청객들 앞에서 통역한 경험은 나중에 콘서트나 행사에서 통역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방송 통역 경험을 생각하면 긴장되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력서에 방송 통역 경력을 추가했다. 통역 의뢰에 있어서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독특한 스토리텔링 소재를 갖게 되었다. 실패할까 걱정되고 긴장하기도 했지만 도전하길 잘했다고 느낀다.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렵다고 포기하는 대신에 두려운 만큼 더 연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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