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과 음악
밥 생각 없어요. 피곤해서 좀 잘게요.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냉수는 미지근히 따뜻했다.
머리부터 얼굴을 쓰다듬으니 흙이 쏟아져내렸다.
멍하니 수건으로 얼굴을 털고 나왔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가 다 되어간다.
빗 속에 거의 4시간을 있었나 보다.
욕실에 오래 있었는지, 김이 한동안 거실로 새어나갔다.
둘은 식탁에 앉아있었고 일제히 내 쪽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국 좀 어서 떠."
엄마는 어디 아프냐 물으셨다.
아버지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시큰둥히 내 쪽을 한번 뚫어지게 보고는 다시 TV 쪽으로 고개를 훽 돌려 소주잔을 벌컥 들이키셨다.
춥다. 머리가 멍하고 온몸이 떨려왔다.
장롱에서 두꺼운 이불을 꺼냈다.
누에고치처럼 둥글게 말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우리 집 거실은 유난히 크고 방은 좁았는데, TV에서는 주말 특집 버라이어티쇼가 나오고 있었는지 패널들의 웃음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높다란 천장이 아래로 쏟아져 떨어져 내리는 것 같다.
왼팔로 더듬어 침대 아래를 쓸어보니, 탁탁 걸리는 소리가 난다.
대강 손가락으로 가느다란 줄을 잡아당겨 끌어올렸다.
알루미늄 바디의 검은색 일제 워크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다.
반에서도 카세트를 듣는 녀석은 보지 못했다.
모두 MP3 플레이어 또는 PMP를 들고 다녔지만, 나는 이 묵직한 녀석이 좋다.
테이프를 감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다 되어서 탈칵하고 멈추는 소음도 좋았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 TV 소리는 거실에서 늘 울렸고, 식탁은 주방 쪽에 있었기에 멀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늘 볼륨을 필요 이상으로 켜두고 식사를 하셨다.
나는 지나치게 귀가 예민했다.
아니, 아버지 귀가 지나치게 둔감했는지도 모르겠다.
저녁 시간 나는 밥그릇을 다 비운 적이 거의 없다.
식사를 대충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 때까지 워크맨을 귀에 꽂고 있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의 앞부분인 곡 Breath가 들려왔다.
이 밴드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냥 한없이 꺼지기에 좋아서 한동안 카세트에서 빼지 않고 있었다.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빗소리와 겹치고, 또 한 번 그 광경이 떠오르며 한없이 꺼진다.
십자가, 웅덩이, 그리고 여자 아이. 눈꺼풀이 희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