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땀시 밤새는겨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나는 아주 많은 글을 쓴다.
'써왔다', 또는 '써오고 있다'가 더 맞는 말이다.
나는 글을 시도 때도 없이 쓴다.
윈도우 메모장에 적기도 하고, 메모 카드에 쓰기도 한다.
대부분은 사장된다.
굳이 저장하지 않거나, 그냥 방치한다.
우연히 저장된 글을 우연히 몇년 만에 다시 읽기도 한다.
방을 대청소하다가 떨어진 메모 카드를 읽고 감탄하거나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나는 오랫동안 '깊이'에 대해 성찰해왔다.
그러다 주제는 깊이있는 삶의 배경인 '여유'로 건너왔다. 깊이는 저절로 민들어지지 않는다.
밑바닥까지 파헤치려는 호기심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호기심은 언제 가능한가?
여유가 있을 때이다.
여유는 모든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여유론에 관하여 쓰고 공부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만들어놓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
아래에서 윗방향으로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목표나 구조, 규칙 따위야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지
미리 만들어놓고 재단하는 것이 아니다.
주제를 정하지 않는다.
출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생활상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타난 생각들이 입자화된 것뿐이다.
금맥이 어디있는 지 물론 추측할 수는 있을 것이다.
구조와 목차, 테마같은 것들은 과학적 지식으로만 추측한 어설픈 지도와 같다.
하지만 실제로 굴을 파보지 않으면 금을 얻을 수 없다.
실제로 실패해보지 않으면 정확한 지도를 그릴 수 없는 법이다.
알던 것이 발견되었다면, 얻은 것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늘 미지의 것을 탐사해야 하는 재미에 공부한다.
나는 앞으로도 우연성과 불확실성에 기대 글을 쓸 것이다.
갱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금을 발견하지 못할 확률이 훨씬 크다.
밑바닥부터 천천히 다져야 한다.
내 생활로부터, 내 직접 경험에서 공부한다.
글은 유치할수록 내가 드러날수록 좋다.
포장지는 없애야 한다.
누구나 안다. 나도 안다.
당장 뭘 얻어내려고 하는 마음, 조급함이 일을 망친다.
그것들이 나에게 포장지를 씌운다.
그래서 지루하고 따분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업로드하는 순간도 일말의 조급함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하트 표시 하나에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나마저 인정하며 내려놓는다.
금의 획득이란 돈도, 명예도, 하트 갯수도 아닌 내 자신의 변성에 있는 것이다.
변성은 한 순간의 결과가 아닌 모든 세세한 과정에 걸쳐 존재한다.
나는 공부가 좋아 공부하는 것이니 천천히 계속 하는 수밖에 없다.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