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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30. 2023

노래 Piano man

끄적끄적

젊었을 때의 나는 지금과 달리 용돈을 꽤 많이 쓰고 다니던 처자여서,

호텔의 부대시설을 종종 이용했었다.

커피숍이라든가, 식당이라든가.

날이 어스름해질 무렵 차를 세우고 천장이 높은 로비에 들어서면,

필리핀 출신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건반이 있고, 현이 있고, 보컬이 있던.

때로 드럼이 가세하, 

장르 불문 모든 노래가 가능하던 재능 있는 친구들.


한두 곡 우리 노래를 더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주로 팝송을 연주하고 불렀는데,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여 나도 흥얼거릴 수는 있는 노래들이었다.

팝송도, 우리나라 대중가요도 1980, 1990년대 노래들이 참 좋았다, 싶다.

촉촉하게 감성을 건드리는 서정적인 가사들과 호소력 있는 가창력이 있었지.



그림에 풍경화, 인물화가 있고 소소한 일상생활을 담은 생활화가 있듯이,

노래에도 순수하게 선율과 리듬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사랑과 담은 노래들이 있고.

일상생활의 한 단면을 시적으로 그려내는 노래들이 있다.

내가 어제 쓴 "노래 Donde Voy"가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한 불안한 처지에 놓인 불법이민자의 위태로운 현실을 노래했다면.

빌리 조엘이 부르는 Piano man은 토요일 밤,

동네 술집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생활인들의 애환을 그리는 내용이다.


노래는 아마도 담배 연기가 자옥했을 술집의 풍경을 보여준다.

테이블에 놓인 진토닉.

각자 따로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단골손님들은 서로의 사정을 아는 눈치이고.

손님들 사이를 물고기처럼 헤엄치면서 웨이트리스는 취기 어린 손님들의 농담을 요령 있게 빠져나간다.

생계로 늙어가는  생활인들도 꿈이 있었단다.

현실에 치이고 밟히며 조각조각 부서진 꿈.

얼얼한 술기운은 잃어버린 꿈의 한 조각을 떠오르게 하고,

이를 잊으려는 듯 한 중년은 피아노맨에게 억 속 아스라한 선율을 주문한다.



이 노래는 빌리 조엘이 뉴욕의 무능한 프로듀서에게서 도망쳐

애인과 함께 L.A. 의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직접 겪일화를 노래로 옮긴 것이다.

작곡, 작사하고 피아노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빌리 조엘은 정말 재능 있는 뮤지션.

나는 이렇게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좋다.

꿈을 품은,

꿈에서 멀어진,

현실에서도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가는 슬픔을 안고 있는 손님들은 토요일 밤,

집이 아닌 술집에서 외로이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인생에 바랄 수 있는 것은 많지만,

실제 허락되는 것은 지극히 소소하니.

아,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있는 한 꿈을 꾸고.

그 꿈의 날카로운 파편들에 베이면서 아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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