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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n 16. 2023

길거리 오지랖

끄적끄적

아이들은 모두 예쁘지만.

그 예쁜 아이들이 걸핏하면 몸부림치며 울부짖는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의 설명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니.

그 시절을 지나왔지만 린 시절의 사정은 까맣게 잊어버린 어른들은,

아이의 막무가내에 답답할 뿐이다.


집에서 그래도 힘든데 엄마 혼자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로 가는 길거리에서 아이가 폭발해 버리면.

우리 어릴 적에야 길거리에서 아이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리면서 윽박지르는 엄마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아이 마음을 우선시하는 세심한 육아의 시대에 엄마들은 이성과 감정의 골짜기에 그만 갇혀버린다.



나는 남의 일에 거의 나서지 않는다.

각자 나 잘 하자, 는 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설 때가 있으니.

엄마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왔는데 아이가 길거리에서 심하게 떼를 쓸 때다.


한 번은 지하철역에서 아이가 엘리베이터를 타겠다고 웅얼거리는 말을 갈 길 바쁜 엄마가 못 알아듣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말았으니.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드러누우며 울고불고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에게,

영문을 알 수 없던 엄마는 육아 교과서의 우아한 대화법을 시도하는데.

너 덧살이나 될까 싶은 아이가 울면서 더듬더듬 내뱉는 단어를 들어보니,

당장 에스컬레이터를 내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자는 것이었다.

출구를 나올 때 엘리베이터 탈 기회가 사라진 걸 안 아이의 목청은 더 커졌고,

엄마가 잡아끌어도 아이는 땅바닥에 들러붙고 말았네.


줄곧 뒤에서 따라오던 내가 나섰다.

그 나이 때는 이성적인 대화 같은 거 통할 나이가 아니라는 게 내 입장이라,

어머 이렇게 예쁜 아이가 많이 슬프구나,

너무 슬퍼서 참을 수가 없어?

그렇게 주의를 돌리면 일단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내가 아이들한테 좀 먹히는 얼굴이거든요!

그다음에는 어마나, 정말 잘 생겼네.

어디 가?

많이 슬퍼?

그러면 울먹이면서도 뭐라 뭐라 설명을 한다.

아이고, 엘리베이터 타고 싶은데 못 타서 슬펐구나?

이렇게 착하고, 말도 잘하고, 똑똑하고, 예쁜 어린이가 왜 우나 궁금했어, 등등 폭풍 칭찬으로 으쓱하게 해 주면서.

오늘은 엄마가 바쁘니까 안 되고 다음에는 꼭 엘리베이터 타요, 약속하면.

울음소리가 점점 약해지면서 헤어질 때는 손을 흔들며 방긋 웃어주기까지 한다.

이걸 엄마가 하려 들면 아이 기세만 올라간다.

낯선 사람이 관심을 보이면서 칭찬 세례를 해줘야 효과가 있다.


같은 방식으로 버스를 기다리다 뭔가 궁금한 게 생겨서 가보려던 찰나,

버스가 와서 두 아이를 버스에 올라 태운 엄마는 세상이 떠나가게 우는 장남 때문에 혼이 나가버렸다.

상당히 모범생 타입인 그 엄마는 버스 승객들과 기사분께 너무 미안해하면서,

아이에게 이성적으로 조곤조곤 사정을 설명하는데.

욕망이 앞선 아이에게 그런 설명이 먹힐 리가 있나.

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젊은 엄마를 도우려 그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역시 잘 생겼다, 착한 어린이다, 를 마구마구 남발하면서

가방을 열어 밀폐용기에 담아 나온 과일조각을 두 아이 손에 쥐어주면서,

(물론 아이 어머니의 허락을 받았다)

서러워하는 아이를 겨우 진정시켰네.

오래 걸렸다.

함께 종점에서 내렸을 때 아이들은 방긋 웃으면서 고개 숙여 안녕히 가세요, 를 시전 했으나.

소동으로 혼이 나간 엄마는 다시는 혼자 아이들 데리고 나오지 않겠다고 절레절레했다.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또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젊었을 때는 안타까워도 쑥스러워 나서지 못했는데,

나이 드니까 혼비백산한 젊은 엄마 입장도 이해가 되고.

엄마가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아 서럽고 슬픈 아이 마음도 헤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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