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왔다!

by 기차는 달려가고

"살아서 새해를 맞았네."

창백한 안색으로 소파에 파묻히신 어머니가 2019년을 맞이하는 소감을 말씀하셨다.

(지난밤 어머니의 심한 통증으로 잠을 못 자) 초췌한 얼굴로 거실에 마주 앉은 모녀는.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는 게 영 실감 나지 않는다.

옴머나, 내가 벌써 예순 살!

이 몸으로 참 오래도 산다 난 벌써 여든아홉!

모녀는 동시에 탄식한다.

"떠밀려서 이 나이까지 온 것 같아!"


마음은 여전히 호기심으로 세상을 돌아다녔던 30대쯤에 머물러 있는 딸은, '이순'이라는 나이가 참 어색하다.

맞지 않는 남의 옷을 빌려 입은 양,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숫자 같다.

그렇다고 젊은 척할 생각이나 세월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아우 지금까지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다만, 음, 이젠 거무칙칙한 이 나이를 살아가야 하는군.

(무엇보다 '이순'이라면 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머니는 80대의 마지막 해를 맞이하는 감회에 지난 수십 년 동안 해 온 '골골 30'년 얘기를 다시 꺼내셨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까 덧붙이자면. 아프다고 골골거리면서도 30년을 더 살더라는 얘기.

건강한 사람보다

약골이라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 더 오래가는 건 예전부터 그랬나 보다.)

건강한 줄 알았던 한창나이의 아버지는 일격에 무너지시고.

스스로 굉장히 연약하다고 평생을 주장해온 어머니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잇따른 타격에도 휘청휘청 쓰러질 듯 무너질 듯. 여전히 맑은 정신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신다.



어머니가 드시게 떡이 물러지도록 푹 끓인 떡국을 먹고 모녀는 한 살씩 나이를 더 먹었다.

설거지를 마친 딸은 거실 의자 흘러내릴 듯 기대어 않는다.

아침에 흐리던 날은 오후 들면서 눈발이 날린다.

새해를 맞는 기대에 들뜰 수도 없이 맞닥뜨린 현실을 떠올리며 모녀는 조용하다.

딸은 휴대폰에 눈을 박고 새해 별자리 운세를 찾는다.

노련한 점성가들은 알쏭달쏭, 애매모호, 아리송한 문장들을 참 시적으로 써 놓았다.

모든 별자리마다 번번이 이런 특별한 문장을 만들어내다니, 대단한 걸!

감탄하면서 '대 행운기!'라는 한 단어만 기억에 남긴다.


이어서 토정비결도 맞춰 본다.

엄마, 되게 좋아.

몇 날 며칠이고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이래.

너는? 네가 좋아야지.

나도 좋대.

모녀는 동시에 소리친다.

"작년에는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어!"

(하지만 작년에도 운세는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기억이....

아련한 희망으로 1년을 버텼다.)

모녀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다.



2019년은 어떤 시간이 되어 줄는지.

아니 2019년은 우리에게 또 얼마나 가혹한 도전을 던질 것이며.

우리는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치는 느낌이다.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와.

어디로 보아도 결코 쉬워질 일은 없다는 냉정한 전망 사이에서.

어쨌거나 최선을 다해야지, 힘껏 살아내는 거 말고 우리에게 무슨 선택이 있겠는가,

마음을 다잡는다.




어릴 때는 인생을 목표라는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등산로처럼 상상했다.

학교 성적처럼 몇 과목에서 점수를 잘 따면 (남들이 평가하는) 좋은 대학이라는 결과가 나오듯.

그렇게 몇 가지 조건을 집어넣으면 땡구루루 성공이, 행복이 굴러 나오는 단순한 과정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성공 신화에 매몰되었던 시절이라,

불가능은 없다!

하면 된다!

눈만 돌리면 이런 구호가 난무했었다.

언젠가는 반짝이는 모든 것들을 손에 넣으리라.

재능과 시간과 노력을 더 하면 (난 자격 충분... 요론 자만심으로 충만했.... 부끄럽...)

정상에 오를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야망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니고. 되도록 나 자신에게 어떤 의무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은 내 평생 나에게 부과한 거의 유일한 의무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으며.

(그냥 행복, 올바름, 당당함, 멋짐, 뭐 이런 추상적인 뜬구름에 심취하심)

어쩌다 단기적인 목표를 가졌더라도,

따뜻한 내 방에서 뒹굴거리면서. (머릿속으로) 일을 시작하고- 고난을 겪고- 결국엔 성공하고- 그래서 성취의 기쁨을 흠뻑 누리는 모든 (가상의) 과정을 거친 뒤에.

벌써 피로해져서는, 아이고, 힘들구나.

지위가 높으면 막중한 책무가 얼마나 피곤할 것이며!

금은보화가 많으면 옴머, 들고 있기도 무서워라!

유명하면 이 사람 저 사람의 갖가지 시선에 참으로 고달프겠네!

그렇게 성공 뒤의 부작용과 허무함까지 몽땅 머릿속에서 시작과 끝을 맛보는 사람이라.

인생사 공수래공수거,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

지금 내 속 편하고 즐거운 게 최고!

그렇게 도인의 심정이 되었으니.

오르고 싶은 정상도,

정상으로 향하는 노력도 내게는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다음에 내가 인생에 대해 갖게 된 이미지는,

마치 장인이 하나의 건축물을 짓는 또는 아름다운 미술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설계도를 그리고, 그 설계도에 맞는 자재를 골라서,

심혈을 기울여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가는 것.

크기는 나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내 인생도 내가 향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내가 옳다고 믿는 행위로만 채워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지금도 많다. 여전히 몸은 움직이지 않고 머릿속에서 다한다, 휴..)

나는 반드시 되고 싶은 것도,

꼭 갖고 싶은 것도 없는 사람이어서.

소유한 물질이나 사회적 성공으로 자신을 증명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인생에서 대면하는 모든 순간에 충실하고 싶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주렁주렁 몸에 매단 훈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 그 자체가 아름답도록 인품과 성숙함과 섬세함을 더, 더, 더 닦아가는 것.

그렇게 매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여전히 건축의 이미지는 유효하지만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은 인생에 대해 다른 이미지가 추가되었다.

인생이라는 대양에 뛰어든다.

바다는 넓고 거칠다.

헤엄치는 매 순간 크고 작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든다.

나를 덮친 파도에서 숨 가쁘게 살아 남아, 휴, 살았다, 안도할 틈도 없이 다음 파도가 또 나를 덮친다.

가끔 물결이 잔잔해지면 따갑게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물에 둥둥 떠서 평화의 행운을 즐기다가,

다시 나를 향해 밀려드는 커다란 파도를 타고 넘어간다.


그렇게 한 고비, 한 고비 닥치는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도에 짓눌리지 말 것.

두려워하면서 누군가의 구원만 기다리지는 말 것.

스스로 파도를 넘으면서 파도에서 살아남은 경험으로 자신의 내면을 확장할 것.

단단해질 것!


인생의 좋은 시기에는 맘껏 즐기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는 존재를 키운다.

좋고 나쁨이 다 내 인생을 이루리니,

쓰고 달고 맵고 짜고 신 여러 가지 맛이 어울려 미각을 만족시키듯.

삶의 희로애락 애오욕을 생생하게 겪으면서 나라는 존재를 아름답게 갈고닦아야지.

비록 완성하지 못해도 나라는 존재의 아름다운 구조물을 지어가는 과정이 내 인생이 될 것이다.



생명을 받아 태어난 모든 생명체들 힘껏 살아간다. 작은 풀들이 얼마나 열심히 꽃을 피워 내는지.

작은 벌레가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서 제 갈 길을 찾아가는지.

나이가 들어서야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그 수고로움을 알겠다.

생명의 소임을 다 하는 모든 생명들에게 경의를!


성공, 명예, 부와 지위 같은 특별한 (세속적인) 성과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도, 얻지 못할 수도 있는 행운 또는 다행스러운 획득이다.

(꼭 다행만도 아니더라)

이런 우연적인 결실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능력껏 고심하고 괴로워하면서도 힘들여 살아간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달달한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옳고 그른 것을 따져가면서

되도록 착하게,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결국은 진인사대천명이다.

결과에 초연하면서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힘껏 살아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어머니의 기도가 길어진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서,

그래도 아직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기도를 자주 드린다.

종교와 관계없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당신의 간절한 기도는.

당신이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당신의 간절함을 전한다.

저의 소망을 허락해주십시오,

제가 이 고통을 잘 견딜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그 곁에서 어머니의 병을 고쳐 줄 수도,

수명을 늘려줄 수도,

통증을 완화시켜 줄 수도 없는 무력한 딸은.

어머니를 부축하고, 아픈 곳을 문지르고, 찜질팩을 덮이고, 음식을 준비하면서.

어머니 혼자 오롯이 견딜 수밖에 없는 고통을 지켜본다.

새해에는 당신 몸의 고통이 좀 줄어들고,

불편함이 다소나마 개선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앞으로 어머니와 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시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지...

그런 건 묻지 않는다.

그저 함께 하는 이 시간에 충실할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머니가 용기를 내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