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용기를 내는 이유

by 기차는 달려가고

딸은 어머니 보살피기를 스스로 선택했다.

그러면 그 대상이 되는 어머니의 입장은 어떨까?

어머니 심경은 절대 단순할 수 없다.

딸이 어머니의 실수로 어질어진 화장실과 방을 치우는 동안 울고 계시던 어머니는 당신을 씻기는 딸에게,

내가 너희들을 얼마나 귀하게 키웠는데 그렇게 키운 딸한테 이런 일이나 하게 만들다니 정말 미안하고 괴롭구나.

이런 꼴로 살아 뭐하니, 한탄하셨다.


노년을 자식들에게 의지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았던 어머니.

자식들은 세상에 나가 제 몫을 하고 당신은 독립적으로 살 것으로 기대했던 어머니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어머니는 몸의 통증과 그에 못지않게 자신이 자식에게 부담이 되어 앞길을 막고 있다는 생각으로 많이 괴로워하신다.


하지만 딸의 보살핌이 필요한 현실적인 처지와 오랫동안 심리적으로, 또 생활면에서 전적으로 딸에게 의지해왔기 때문에 이 시점에 딸에게서 떠난다거나 딸을 떠나보낼 수도 없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마음속 갈등에 지쳐 종종 당신의 생명은 이쯤에서 그만둬야 한다는 말씀도 하신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버겁다.

어느 한 시기라면 모를까,

자신의 인생이 내내 쉽고 잘 굴러간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무척 덥고 잠시 적당하고 꽤 추운 네 계절이 있듯이,

대부분의 인생에는 잠깐 좋고 오래 나쁘고 매우 힘들고 정말 어려운 시절이 있는 것 같다.

예수님처럼 훌륭한 분이 아니더라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신음하면서

저를 짓누르는 인생의 무게를 제발 덜어 주십사, 간절히 빌게 되는 때가 있다.

그래도 내일은 나아지겠지,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아련한 희망이라는 촛불에 의지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언젠가는 만날 찬란한 빛을 꿈꾸며 무거운 하루하루를 견디어내는 거겠지.


어느새 그 언젠가의 평화와 안식이 와주어야 하는 노년이 되었다.

평생 열심히 살아온 보상으로 노년에는 내게 강 같은 평안과 안락만이 있어야 하는데.

순한 눈망울을 껌뻑이며 ‘고삐 잡으시는 대로 가드리리다’ 그렇게 착한 말로 보이더니,

기대에 부풀어 말 잔등에 올라타는 순간 제멋대로 날뛰는 미친 말로 돌변해버린 인생이란.

‘요건 몰랐지?’ 약 올리면서 사방천지 분간할 수 없게 냅다 달려가 버린다.

(인생행로의 본인 책임을 면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

상황을 자초한 건 본인의 행동이고, 선택이다.

다만 살아오면서 뿌린 일곱 빛깔 무지개 여러 씨앗 중에

어떤 것이, 언제, 무럭무럭 자라나 큰 열매를 안길지 모른다는 게 함정.)

건강과 재산이라는 노후의 두 가지 축을 갖추고 있었던 어머니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잃어버린 채 긴 말년을 맞게 되었다.

건강을 잃어도, 재산을 잃어도 인생은 계속된다.



길고 힘들었던 은행과의 소송 기간, 우리 집 잔디밭은 점점 텃밭으로 바뀌어갔다.

마음이 괴로울 때 마당에 나가 몸을 움직이시던 어머니는 채소를 키우기 시작했고.

채소 자라는 재미에 시름을 덜 수 있었다.

아파트로 살림을 옮긴 뒤에도 한동안은 서울 근교 주말 농장에 땅을 빌려

감자, 당근, 고구마, 가지, 토마토, 콩 같은 여러 식물들을 조금씩 키웠다.

‘가성비 망‘의 농사였지만 농사짓는 데서 얻은 즐거움과 기쁨은 효율성으로 따질 게 아니다.

열매를 따면서 ‘고마워’ 채소에게 인사를 했다.


책도 많이 읽으셨다.

며칠에 한 번씩 딸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짐 빌려오면

어머니는 취향에 맞는 소설이나 인물, 식물 또는 건축 같은 주제의 책을 골라 딸과 나란히 앉아 읽으셨다.

몇 년 전 어머니 또래의 프랑스 노르망디 농부의 이야기를 읽으시고는.

(결혼하지 않고, 역시 결혼하지 않은 두 여동생과 옛집에서 함께 살면서.

욕심 내지 않고 자급자족하는 선에서 선조들의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고기를 낚으며 살아온.

진정 안빈낙도의 농부였다.)

이렇게 살아도 될 것을, 나는 내 사는 방법 말고 다른 식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었구나, 하셨다.

평생 배워야지, 자기 사는 좁은 소견으로만 세상을 보면 인생의 우여곡절을 어떻게 다 겪어내겠니, 말씀하신다.



어느 정도 상황이 수습되어 일단 한숨 돌리게 되었을 때 어머니와 딸은.

울화통 터지는 상대방의 거짓말투성이 주장에 일일이 대응해야 했고,

어이없게 사라진 재산으로 당장 생계 곤란이라는 상상도 못 했던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도.

그래도 우리가 망가지지 않고 순한 마음으로 온전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자축했다.


작은 농사와 책 읽기가 우리를 지탱하는데, 아니 지탱을 넘어 고난 속에서 인간적 성숙함을 얻어내는 데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우리 집 강아지 덕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강아지가 우리 모녀에게 준 위안이란... 고마워, 하늘나라에서 잘 쉬고 있지?)

풍요로움 속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고난을 통해서만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생명이 있는 한 인간사의 모든 기쁨과 고난은 피해 갈 수 없고, 아니 오히려 취약계층 ‘노인’으로 편입되는 노년기에 더 어려운 입장에 떨어질 수 있다.



어머니의 노년을 가까이서 지켜본 소감으로. 노후 준비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간적인 성숙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상황에 떨어져도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의연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용기.

자신의 외적 조건이 바뀌더라도 융통성 있게 적응하면서 자존감과 인간적인 순수함을 잃지 않는 힘.

평생 내면을 성숙하게 키워내는 습관과 찰나의 아름다움도 깊이 느끼고 마음에 간직하는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고통을 견디면서 순간순간 삶이 주는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고.

그 힘으로 우리는 살아갈 용기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고통스럽다고 비명만 지르면서 황폐하게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부모님 세대 대다수가 노후 준비를 따로 한다는 개념을 가질 수 없었던 시절을 살았다.

여러 자식 키우며 당장 먹고사는 일도 버거웠기 때문에 뒷날을 계획할 여유가 없었고.

오로지 자식들 가르쳐서 사회에 자리 잡도록 하는 것-

그것만이 떠올릴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대책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 세대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자신의 노후를 준비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자신의 노년을 위한 자금을 따로 마련할 수 없었던 또는 마련했어도 다 큰 자식들의 생계 기반을 위해 모두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지금 노인 세대는,

이렇게 오래 살지 몰랐을뿐더러 자신들 젊었을 때와 달라진 사회 환경에 어리둥절할 것 같다.



지금 우리 세대가 전 세대의 무방비 노후 대책에 분개하면서 자신의 노년을 위해 부동산과 연금 같은 자금 계획에 열중하지만.

과연 우리 세대가 노년이 되었을 때 우리 계산대로 세상이 움직여줄지.

지금 노인 세대처럼 예상할 수 없었던 달라진 환경에 억울해하면서 또 다른 노년의 고달픔을 겪어야 할지, 그건 모를 일이다.

세상의 흐름은 개인의 계산을 항상 넘어서더라.


노인들은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다.

인생이 좋은 것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며,

어쩌면 살아오는 내내 힘들고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나라 지금의 노인들은 매우 어려운 사회적, 역사적 세월을 견뎌왔다.

어려운 인생행로를 겪었기에 어차피 인생은 고해려니.

사회 저 구석으로 밀려나 외로움 속에서 곤란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저 살아있으면 겪어내야 할 인생의 업보려니,

담담하게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인이라 해서 체념과 절망으로만 살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노인들에게도 때때로 가질 수 있는 지극히 소소한 행복과, 더 나은 미래라 올 거라기대로 현실을 견디는 힘을 낸다.


어머니가 육신의 고통을 겪는 지금 자식들 모두 편한 구석 없이 하나같이 인생의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어머니가 이제 그만 살고 싶구나, 하실 때. 딸은 지금은 때가 아니야, 잘 버텨주세요, 부탁한다.

지금 우리에겐 엄마의 기도가 필요해,

엄마 아니면 누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겠어요?

우리가 빠진 이 어려움에서 좀 벗어났을 때, 어머니가 마음을 놓고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자식들을 걱정해야 한다면 자식들은 두고두고 괴로울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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