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머니 건강 상태가 양호하셨을 때 이야기)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피곤한 다리를 두드리고 있을 때,
“어머니랑 여행 오셨어요?”
앉을자리를 찾는 듯, 풍채 좋은 노부인이 말을 걸어왔다.
“아유, 부럽습니다.”
낯선 사람과 나누는 의례적인 몇 마디가 오가고, 세 사람은 자동판매기에서 뜨거운 율무차를 뽑고 가방에 남아 있던 간식거리를 꺼냈다.
몇 해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사업을 정리해서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는 그 부인은.
“집에 가만 앉아있으면 왜 그리 서글픈 생각만 드는지.”
고향에 친구들 만나러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먹을 것도 모자란데 자식들은 줄줄이 낳으시고...”
그 부인은 열 남매 집 맏이였다.
연달아 태어나는 동생들을 업어 키우느라 학교 소풍에도 따라간 적이 없었다.
끄트머리 동생들이 태어나기도 전인 열두어 살에 집을 떠나... 억척스레 일만 하며...
하다 보니 돈이 모이더군요.
친정에 가게 차려주고,
도시로 돈벌이 떠난 동생들 배곯을까 때마다 먹을거리 싸 보내면서...
담담하게 말하는 간결한 어조에서 고단했으며, 성실했으며, 넉넉한 마음으로 야박하지 않게 힘껏 살아온 한 여자의 일생이 쫘악 그려졌다.
다시 얘기는 60여 년 전,
전쟁이 막 끝난 시절로 펄쩍 뛰어서.
“여동생 하나는 어려서 잃었어요.
에유, 치료가 다 뭐야, 열이 펄펄 끓어서 축 늘어진 애를 마냥 업고만 있었지요. “
어린 언니는 훌쩍훌쩍 울면서 수녀님을 도와 차갑게 식어가는 아이의 머리를 빗기고.
성당 앞마당에 핀 꽃을 따다가 화관을 만들어 씌우고,
꽃다발 한 아름은 가슴에 올려주었다.
기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모녀와 그 부인은 “건강하세요!” 진심을 담은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기차에 올랐다.
어두운 밤 집으로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
양 갈래 머리를 묶고 꽃을 안고 누운 꼬맹이 여자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머니가 환자가 되면서 병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의료진부터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 종교 봉사자들, 요양보호사, 건강보험공단 같은 분들.
평소에는 마주칠 일이 없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주로 어머니 병과 관련한 용건이지만 곰곰 돌아보면 병과 관련해 만나게 되는 분들과 꽤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따듯한 위로도 받았다는 걸 알게 된다.
여행지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무심히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의외로 쉽게 서로의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험을 갖듯이.
병과 관련해 마주치는 사람들과도 겉돌지 않는, 진솔한 마음을 나누곤 한다.
여행지에서나 병원에서나 아마도 다시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타인이라는 무의식적인 계산이 작용하기도 하겠지만.
여행에서는 생활 현장에서 한 발 떠나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있어서,
치장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서 마음이 열리는 게 아닐까 싶은데.
생존 여부가 거론되는 중한 병의 경우. 살아온 삶을 되짚어 보면서 아쉬운 것, 모자란 것, 진정 원해온 것,
그렇게 인생의 본질을 돌아볼 기회가 된다.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보면서 과연 내가 병을 이겨내고 더 살아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지 삶의 의미를 곰곰이 물을 것이며.
그렇게 삶에 관해 진지해지는 한편,
세상은 나의 고난과 상관없이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는 다소간의 외로움을 느끼면서.
과일 몇 쪽과 병 상태를 묻는 몇 마디로 시작된 이야기는,
동병상련이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서.
상대방이 자신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더해서 마음속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깊은 응어리를 툭, 내뱉기도 하지.
버겁고 갑갑한 인생살이에 지쳐서 차라리 확 죽어버렸으면!
때로는 넋두리를 했더라도.
막상 죽음을 대면하게 되면,
아직은 세상에 살아남아야 할 당당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꼭 생계나 부모라는 뚜렷한 실용적인 몫을 담당해서가 아니라도.
이 세상에서 자신만이 맡고 있는 유, 무형의 임무가 있는 것이다.
병이 매우 중해서 ‘곧 회복될 거야’라는 병문안 온 이들의 따듯한 덕담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누구에게도 드러내 말할 수 없었던 ‘나는 살고 싶다’는 강렬한 절규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낯선 사람에게 털어놓으며
실낱같은 가능성에 기대어 그 힘든 치료 과정을 견디어내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위안을 받지만 제도에서는 확실한 도움을 받는다.
암의 경우 지난 몇 년 사이에 환자 부담액이 대폭 줄었다.
청구서 내역을 보면 예전보다 확 줄어든 총액에서.
이렇게 많은 액수를 건강보험공단에서 지불해주는구나,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크게 인사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들어가는 비용이 치료비만이 아니라서 환자는 병으로 인해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되지만,
치료에 드는 비용은 정말 적어졌다.
우리 어머니처럼 중환자이면서 집에 계시는 분들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바람에 어, 어, 하면서 상황에 휘둘리느라 절차를 시작할 정신적, 신체적 여유를 갖지 못했었다.
좀 나아지면 해야지, 다음에 정신 좀 차리면...
그렇게 미루면서 2년 넘도록 하루 종일 환자와 허우적거렸는데.
(익숙한 일상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시도할 여유가 없을 만큼 지치고 피로했던 나날이었다.
한 달에 하루만이라도 쉬었으면, 하는 불가능한 소원을 혼자 삭혔다.
노동 시간 긴 것보다 휴일 없는 연속 노동이 심신에 더 해롭다는 걸 경험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몇 달 전부터 장기요양보험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매일 몇 시간씩 집에 방문해주시는 요양보호사 분은 환자에 대한 깊은 연민과 경험을 갖춘 분이어서 어머니를 성심껏 돌봐주신다.
덕분에 지쳐있는 딸도 약간의 휴식과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어 이 글을 쓸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심한 통증으로 환자도, 보호자도 몹시 힘들었던 주말을 지냈다.
월요일 아침이 되니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자 비틀거리면서 그래도 오늘은 요양보호사가 오시니까, 안도되는 심정이었다.
벨이 울리고 모니터 안에 요양보호사분의 얼굴이 잡히는 순간 저절로 ‘구세주가 오셨네’ 환호성이 터졌더랬다.
요양보호사 분은 환자의 상태를 잘 알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어머니의 몸 상태에 관한 이해를 공유할 수 있는 분이다.
딸과 요양보호사 분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신 어머니는, 내게는 두 사람이 ‘엄마’라고 당신의 신뢰와 감사를 표현하신다.
(시간이 지나면서 타인의 손을 빌리는 데서 발생하는 곤란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평생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매일 몇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머니에 대한 요양보호사의 진심은 믿지만 점점 도움보다는 누구를 응대해야 하는 부담이 환자와 보호자를 힘겹게 했었다.)
어머니의 병을 통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픈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자를 대하게 되면 다들 위로하면서 병에서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준다.
한껏 친절을 베푼다.
어머니와 휠체어를 싣고 병원으로 가는 택시에서.
검사실로 가는 환자가 찬바람을 맞지 않도록 미로 같은 병원을 이리저리 돌아가는 병원의 이송 요원들에게서.
격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피곤에 지친 의료진들에게서도.
(살고 싶다는 간절한 메시지를 보내는 환자들을 매일 대하려면 심리적으로도 몹시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현관문이라도 열어주려고 현관을 향해 먼저 뛰어가는 아파트 직원들.
보호자를 염려해주는 건강보험공단 직원의 따듯한 말투에서.
아픈 이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는 모두의 착한 마음들이 전해졌다.
아픈 어머니 곁에 있는 딸도 덩달아 사람들의 따듯한 마음과 위로를 받는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