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진 재난방송을 보고 있었다.
방송은 어두운 길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주민들의 당황한 모습들을 연결하면서,
전문가들이 시민들에게 재난상황에서의 대처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TV를 보면서 만약 우리에게 저런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하지?로 생각이 흘렀다.
그때 어머니는 암이 재발했거나 전이되었다는 검사 결과는 없었지만, 많이 쇠약해지셔서 도움 없이 혼자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외출해서 잠깐 걸어야 할 경우
어머니는 딸에게 온몸을 의지해 느릿하게 움직이셨는데,
그러다 살짝 어긋나면 모녀는 같이 휘청거렸다.
음, 머릿속이 분주하다.
베란다에 있을 완강기를 곁눈질하면서
몇 년 전 세일한다고 사놓고 개봉도 못 한 커다란 배낭은 어디 있더라.
물, 비상식량, 옷이랑 덮을 것을 넣고.
엄마, 아, 엄마...
그쯤에서 상상 속 피난 상황은 종료되었다.
난 엄마 업고 일어나지도 못하지.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을 텐데 계단을 통해 어머니를 모시고 배낭을 둘러메고 이 고층아파트를 벗어나겠다니, 불가능.
그렇다고 어머니를 재난 속에 혼자 두고 나만 살러 가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냥 함께 여기 가만히 있어야겠구나.
곧이어 머릿속에선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밖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앵앵 요란하고 건물은 계속 흔들린다.
진동에 쓰러진 물건들로 집안은 어지럽다.
그 사이 마주 앉은 모녀는 서로에게 깊숙이 절을 한다.
"그동안 고마왔습니다.
어머니와 모녀의 인연으로 살아 정말 행복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절을 마친 모녀는 고요하고 차분하게 나란히 앉아 마지막 순간을 기다린다.
그런 상상을 해도 슬픔이 치밀어 오르지는 않았다.
처연하지도 않았다.
담담한 심정이었다.
어쩌면 내가 놓여있는 상황이 바로 그것이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싶었는지 모르겠다.
늙고 병든 어머니와 어머니를 보살피는 딸은 빠져나갈 길 없는
또는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지도 않은 채. 막다른 골목에서 운명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 같았다.
제법 의젓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지만,
함께 침몰할 수도 있다는 잿빛 예감은 때때로 떠올랐다.
구조대가 우릴 데리러 현관문을 탕, 탕 두드릴지도 몰라,
실오라기 같은 기대감을 애써 누르면서.
마지막이 올 때까지 잘 지내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수술하고 여섯 번 항암치료받으시고 2년 남짓은 건강이 좋으셨다.
정기검진에서 이상 없음- 결과를 받으면 입에서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의사에게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하고 진료실을 나와
엄만 환자가 아니야, 오래오래 사세요.
고맙다. 네 덕분이다.
그렇게 서로를 축원했었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길 바랐다.
어머니 수술하시고 처음에는 회복이 순조로웠던 것처럼.
괴로움 없이 편안하게 사시다 평온하게 이승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
어머니 퇴원하시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절대 쉽지 않았던 어머니의 수술 뒤 긴 회복 과정을 전하면서.
"병원에서 어머니 앞으로의 시간을 시뮬레이션한 것 같습니다.
순조롭게 늙어가시기를 기대하지만.
기대와 달리 건강이 나쁜 상태로 오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습니다.
어쩌겠어요.
닥치면 닥치는 대로 최선을 다 해야지요."
그런 구절을 메일로 보낸 기억이 난다.
초짜 의사와 음대생으로 만난 우리 부모님은, 쉬운 길을 바라지 않고 정직하게, 정말 열심히 사셨다.
나는 빈손으로 출발한 부모님이 합심해서 일구어낸 안정된 생활기반과 동시에 당신들이 지켜낸 진솔한 삶의 가치에 자부심을 가졌다.
두 분이 완벽한 인간은 아니고 내가 부모의 모든 것을 긍정하지도 않았지만.
물질주의가 압도하는 세상에서 당신들은 속됨으로 떨어지지 않고 인간적인 순수함을 지켜낸 분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환갑도 맞기 전 짧은 투병 끝에 돌아가셨을 때,
스물여섯이 되었던 나는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고
너무나 깊고 많은 사랑을 받기만 했던, 염치없는 딸이 되었다.
부모가 돌아가신다는 것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회복 불가능한,
대체가 안 되는,
그냥 "상실"이다
내가 집안일로 한창 힘들어할 때 어머니는
"사람 죽으면 영혼이 없기는 한가보다. 아버지 영혼이 있으면 네가 이렇게 힘들게 놔두겠니"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나는 그때
"살아서 가족 위해 그렇게 애쓰셨는데 이제 편하셔야지, 우리 힘들다고 잘 쉬는 아버지 불러내면 너무 염치없어."
대꾸했었지만.
사실은 내가 시시때때로 아버지를 불러내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날 좀 도와주세요, 아버지...
그렇게 도움을 청한다는 걸. 어머니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럭저럭 굴러갔던 우리 집은 외환위기 시기에 빈털터리가 되어서 은행과 무지막지한 소송까지 진행해야 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머니는 그저 자식들이 잘 되기만 바랐던 것뿐인데 결과는 너무나 혹독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는 위기에 빠진 어머니를 도울 수밖에 없었고,
길고 엄혹한 시기를 함께 견디면서 엄마와 딸은 공동운명체가 되었다.
"내 엄마를 불쌍하게 놔두지 말아야지."
그래야 내 맘이 편했다.
아버지에게 못한 자식 노릇 엄마에게 다 해야지.
그게 현재로 이어지는 내 마음가짐이다.
혼자 둘 수 없는 환자를 돌보는 일은 어렵다.
통증이 새벽에 더 심해지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대신해 두 겹의 움직임을 해야 한다.
그런 상태가 1년, 2년, 휴일 없이 이어지니 피로가 극에 달한다.
(심지어 나는 20대부터 자타공인 '사실상 장애인'이라 말하던 심한 저질 체력이었다.)
또 심리적으로 수시로 흔들리는 환자를 돌보려면
보호자는 정서적 안정성을 지켜야 한다.
2년 넘게 어머니 곁에서 꼼짝도 못 하면서 인간관계는 거의 단절되었다.
주변에 중환자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는 경우가 없다 보니 남에게 사정을 말하기도 어렵다.
다들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쉽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다들 훈수를 많이 둔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런 줄은 알지만.)
경제적으로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편하게 사시기를 바라기 때문에 생활을 더 낮추지도 못 한다.
나의 노후?
휴...
그렇다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니다.
딸은 갱년기가 뭔 지도 모른다.
잠잘 시간이 모자라 문제지 눕기만 하면 곧 잠에 떨어진다.
비만이라...
엄마 안 드시는 거 다 주워 먹지만 몸무게는 줄어든다.
불안이요?
당장 닥친 근심거리도 걱정하지 않아요.
내 마음을 괴롭힐 것들은 머리에 뜨기 전에 알아서 걸러집니다.
철벽방어죠.
수시로 어딘가가 아프지만 병원 갈 시간이 없는지라 한동안 몸을 괴롭히다가는 사라지더이다.
어딘가 자취를 남기고 나중에 더 큰 병으로 돌아올지 모르겠으나, 그건 그때 볼 일!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좋은 점이 있다.
내가 어머니를 돌본다는 떳떳함이다.
평생 가족 안에서 살아온, 대인관계에 서툰 어머니를
가족 없이, 혼자, 처음 보는 남들 사이에 떨어뜨리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다.
마지막까지 당신에게 익숙한 집에서 딸의 보살핌을 받으셨으면 싶은데.
그것 또한 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사람과 사람이 내적으로 깊이 연결된 진실한 관계를 이루는 것은 참 어렵다.
천륜이라는 부모 자식 사이어도 독립된 인격적 개체가 되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맺는 것은 굉장한 인연과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머니와 딸로서, 개별적인 인간으로서 어머니와 나는, 서로 깊이 믿고, 고마워하며, 미안하고 안타깝다.
무엇보다 서로 위한다.
어떤 이해관계도 따지지 않고,
존재 그 자체로 서로에게 튼튼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건 인생의 큰 성취이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평생 딸은 자신이 부모에게 존재만으로도 '축복'이라는 걸 의심한 적이 없고.
그래서 그 '축복'에 걸맞은 존재가 되겠다는 마음을 다지면서 자랐는지 모르겠다.
딸에게는 부모가 축복이었다.
어차피 인생은 무엇을 얻어내는 경연대회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시간은 흐르고 인생은 소진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떤 결과물을 얻어내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내지만.
나는 이 시기, 내 어머니를 돌보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길 선택했다.
사람은 과거와 미래, 자연과 인간, 자신의 내면과 현실 세계라는 광대한 단위에서 살아가는 작은 존재이다.
인생에는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이루어내는 범위가 있고.
'운명'이라는 인과관계를 당장 헤아리기 어려운,
더 큰 차원에서 결정되는 부분이 있다.
내게 있어 돈이나 성공에는 관심도 떨어지지만,
그건 내 의지를 넘어서는 운명의 소관이라는 판단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성심으로 힘껏 할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 평온함을 얻어내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 몰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