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밥상의 원칙

by 기차는 달려가고


이른 아침에 어머니는 수술실에 들어가셨다. 자식들은 대기실에서 어머니의 수술 현황이 표시되는 전광판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오전이 지나가면서 비슷한 시간에 수술실에 들어간 사람들이 회복실로 옮겨진다는 표시가 연신 깜빡거렸다.

전광판의 환자들은 계속 새로운 이름들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여러 장기를 제거하는 어려운 수술이라 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 이름 옆에 표시되는 ‘수술 중’이라는 붉은 글씨에 점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가끔 간호사가 수술실 밖으로 나와 보호자를 찾으면 우리 어머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하고.

오전, 오후가 꼬박 소요된 수술 시간 내내 어머니 수술이 그저 무사하기만.

아무 탈 없이 수술을 견디시기만 기도했다.


회복기간도 길었다.

처음에는 회복이 순조로워 역시 우리 엄마는 불사조야, 입방정을 떨었는지.

곧 상태가 악화되어 꼬박 한 달을 병원에 계셔야 했다.

퇴원은 했지만 병원에 계실 동안 음식을 거의 드시지 않아 피부색, 얼굴형까지 달라진 어머니는 체력이 바닥이었다.

회복이 끝나면 이어서 항암을 시작해야 했지만 약간이나마 체력을 높일 수 있도록 시간을 조금 얻었다.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게 되자 모두들 어떤 음식이 병에 좋다더라, 뭐는 나쁘다더라.

그렇게 주변에서 와글와글 훈수가 무성했는데.

우리 어머니는 당신이 원하지 않는 음식은 억지로 삼킨 들 식도에서 넘기지를 못하여 곧 토해내시는 분이다.

(환자가 되어보면 우리 민족 참으로 적극적인 교육자 체질이 아닌가? 싶다.

묻지도 않았는데 단순한 의견 제시로는 성이 차지 않아 심지어 자신의 의견대로 따르라고 성화를 ;;.)


체력이 회복되어 항암제를 감당해내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어머니가 드실 만한 밥상을 차려야 하니.

당연히 잘 드시는 음식만으로 밥상을 차려냈다.(어차피 해로운 음식도 아니고)

우리 집은 원래 육식을 많이 했었는데 어머니와 딸이 겪어야 했던 가정 경제 붕괴와 은행과의 기나긴 소송이라는 10년의 고난 시대를 거치면서 육식량이 확 줄었다.

그렇다고 채소를 많이 먹게 된 건 아니었지만.


수술한 뒤에 다시 어머니는 입맛이 바뀌어서

고기 덩어리는 안 드시고.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내키지 않는다거나.

그래서 소고기로 만든 국물-도가니탕, 맑은 뭇국, 사골국물 같은-과 해산물을 주로 드시게 되었다.

약해진 구강과 치아 때문인지 덜 비리고 부드러운 해산물을 더 찾으시고,

과일을 이전보다 더 많이 드신다.

항암 중에도 식욕은 떨어지지 않아서 당신 입맛에만 맞으면 식사를 잘하셨으니 그 덕에 항암제를 잘 견디시고 체력도 점차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 어머니 밥상을 차리는 데 은연중 몇 가지 기본 원칙이 생겼다.


1) 환자 입맛 끌리는 대로


어머니의 까다로운 입맛에 대해

타고나기를 비위가 약해서 그렇다고 어느 한의사 분이 어머니 편을 들어주셨다.

그때그때 당신이 원하는 재료, 좋아하는 반찬, 주문하시는 방식으로 음식을 만든다.

몸 상태가 안 좋을수록 입맛은 더 예민해지고 변덕이 심해져서.

나로서는 분명히 같은 음식, 같은 맛인데도 어떤 때는 간이 안 맞는다, 고 말씀하신다.

기껏 당신의 주문대로 음식을 만들었는데 한 술 뜨시고 앞에 놓인 반찬을 식탁 저쪽으로 밀어놓으시면 힘이 빠지지만.

절대 감정적으로는 대응하지 않는다.

입맛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나.

무조건 당신의 입맛을 긍정한다.

오, 오늘은 안 당기셔?

다음에는 다르게 해 볼게요.

뭐가 잘못됐지?- 이 정도.


딸은 성의는 있으나 솜씨는 모자라니 늘 재료와 조리 방법에 관한 정보를 찾아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다.

환자가 싫증 내지 않도록 번번이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야 하니 재료에 의지하게 되더라.

가끔 먹던 고급 재료가 매번 상에 올랐다.

그래서 비용은... 음... 들었다. 꽤.

어차피 한정된 금액 내에서 쓸 수밖에 없는 생활비라 식비가 늘어나면 다른 비용이 줄게 된다.

우선순위의 문제.



2) 질 좋은 식재료,


식재료는 꼼꼼하게 골랐다.

어머니 병을 알기 전부터 친환경, 유기농에 관심이 있었고 화학조미료는 쓰지 않은지 오래라.

환자가 되었다고 갑자기 식생활이 바뀌지는 않았다.

젊을 때는 바깥 음식도 잘 드시더니 몸이 아픈 뒤로는 감각이 훨씬 예민해지셔서. 어쩌다 바깥 음식을 드시게 되면 재료,

특히 양념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셨다.

(한 입 뜨면 음식에 들어간 재료의 질을 일일이 분석하는 재능이 더 정밀해지셨다.)


재료의 신선도를 따지고

잘 숙성시킨 장, 좋은 재료로 적절하게 짜낸 기름, 잘 말린 고춧가루, 같이

양념도 꼼꼼하게 골랐다.

되도록 외출을 하지 않는 체질이라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할 때가 많은데. 거래하는 생협 외에 직접 농사짓는 분이나 산지에서 조달해서 파는 식재료를 많이 찾아냈다.


랜선으로나마 생산자를 알게 되면 농사짓는 수고로움도 어느 정도 알게 되니까 재료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것 같다.

그분들이 얼마나 애써서 농사를 지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곡식이, 이 계란이 생산되고 우리에게 도착했는지. 어렴풋이라도 알게 되면 내가 농사지은 것 마냥 감사하고 귀했다.



독실한 옛날 기독교 신자였던 우리 할머니는 어린 우리가 음식을 남긴다거나 상 밑에 떨어뜨려 버리게 되면 ‘죄로 간다’ 시며 깜짝 놀라셨다.

할머니의 음식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궁핍한 시대를 지내왔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할머니께서 먹을 것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셨던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손주들에게 당신이 보여주신 음식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을 수 있어 할머니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우리가 잘 살게 되면서 밥에 대한 감사함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다.

맛이 점점 더 자극적이 되고 밥상이 즐거운 놀이같이 되어가는 요즘의 세태도 나쁘다고 보지는 않지만,

밥상의 의미가 그것만은 아니다.

함께 밥상을 나누는 사람들 간에 소통과 이해를 돕고 맛있는 음식이 마음에 주는 위안이 있다.


무엇보다 밥은 인간의 생존을 지탱해주는 생명의 근원이며,

자연의 섭리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통해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좀 더 본질적인 것에 눈을 돌려 참된 것과 소중한 것을 분간하고.

진정 귀한 것들에 더 무게를 두는 진솔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위중한 환자를 돌보다 보니 밥상이 곧 생명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3) 금방 만든 음식


어머니가 평생 그때그때 갓 만든 반찬으로 우리들 밥상을 차려주신 덕에 금방 만들어 먹는 반찬들이 익숙하고 그런 맛에 길들어 있다.

지금은 어머니 드시는 양이 확 줄어 뭘 해야 밥을 드실까, 신경은 더 쓰이지만.

그래도 음식 만들고 치우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노동량은 전보다 가벼워졌다.

암 전이 전까지 몇 년 동안 까다로운 입맛으로 식사를 잘하실 때는 장보기와 식단 짜기 뿐만 아니라,

하루 세 끼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차리고 말끔히 치우는 노동에 시간과 에너지가 상당히 소모되었었다.

나는 일을 빨리빨리 못하고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부류라 뭘 해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하루 종일 부엌에서 차리고, 먹고, 치우고, 또 준비하고의 무한반복.

그래도 음식은 후딱후딱 해치우기보다 단계 하나, 하나 정성을 들이면 맛이 확실히 좋다.


병원 생활하면서 가장 곤란한 점이 음식 문제다.

늘 환자 곁에 붙어있어야 하는 보호자 식사 문제도 해결이 어렵고.

우리 어머니처럼 입맛이 일반적이지 않은 환자는 병원 같은 공동생활이 참 힘들다.

병원 음식을 안 드시니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서 가져가는데,

전자레인지로 데워서 제맛이 나는 메뉴는 거의 없더라.

뭘 해가도 냉장고에 들어갔던 음식을 전자레인지로 온도만 높인다고 해서 맛이 나지는 않는다.


병원 특유의 불편한 분위기에 더해 침대에 누워서 수액만 맞으니 소화도 더 안 돼,

음식 맛도 안 나, 몸은 퉁퉁 붓지.

병실에서 어머니는 음식을 먹으면 몸이 더 불쾌해지신다며 거의 안 드시려 한다.

약간의 죽, 국물 조금, 그때그때 깎은 과일로 연명하니 병원에서 퇴원하면(입원 기간 동안 몸무게를 차지하던 수액 무게가 빠져나가면) 체중이 확 줄어있다.

몇 년째 음식 보따리 들고 병원을 들락거리지만 여전히 대책을 못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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