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by 기차는 달려가고

기분 좋게 저녁을 드시고 화장실에 간다고 보행보조기를 붙들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어머니는 푹 무릎을 꺾으며 무너져 내렸다.

다리가 안 움직여...

여기저기 만져보니 왼쪽 고관절 부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아픈 부위를 살살 문지르고 근육통에 효과가 있는 스프레이를 뿌리고 연고를 문지른 뒤 차가운 찜질팩을 얹었다.

밤이 깊어가도 다리는 못 움직이고 통증도 여전하다.

발이 붓는 게 눈에 보이고, 암의 통증을 완화시키는 강력한 진통제도 이 통증에는 효과가 없다.

잠을 못 이루고, 날이 밝아 와도 나아지지 않는다.

딸은 어머니의 아픈 부위를 문지르면서 졸음이 잔뜩 낀 목소리로 묻는다.

지금 응급실 갈까?

몇 초 뒤 환자가 대답한다.

아니... 아픈 것보다 응급실에 있는 게 더 힘들 것 같아...



쇠약한 중병 환자는 어느 하루도 탈 없이 지나가지 않는다.

소화가 안 되거나(건강한 사람이 소화 안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소변과 대변은 막히거나 쏟아지거나.

몸이 굳고,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목이 붓고, 열이 나거나 오한이 나고.

혈압이 널뛰기를 하고, 온몸이 저리고, 뼈마디가 쑤시고,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고, 눈알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잠을 못 자거나 종일 가수면 상태거나.

갈증, 기침, 가래, 숨이 가쁘고, 피부가 벗겨지고, 몸에 반점이 생기고.

정도가 매우 심했던 대상포진(한밤중에 갑자기 수포가 반신을 덮기 전까지 왜 통증이 이리 심한 지 알 수가 없었다) 등등등

원인도 모르고 진행도 예측할 수 없는 몸의 이상들이 다양하게 줄줄 매일매일 꼬리를 잇는다.

어머니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몸은 활발한 생명 활동을 전제로 설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기적으로 결합된 신체의 정교함은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환자가 이상 증세를 겪을 때마다 환자와 보호자는 딜레마에 빠진다.

당장 응급실로 달려가 불편한 자리와 검사로 힘들더라도,

원인을 찾아내고 개선의 방법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지그시 불안감을 누르며 추이를 관찰할 것인지.

이상 증상이 하루 이틀 나타났다가 완화되는 경우가 있고.

병원에 가서 힘들게 홍수 같은 검사의 터널을 거쳐도 특별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거나,

매일 드셔야 하는(효과와 부작용을 동반하는) 약만 늘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몸의 노쇠와 위중한 병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증상일 텐데.

핵심 원인이 달라지지 않는데 개별 증상이 쉽게 처리되겠는가.



또 혼자 병원에 갈 수 없는 고령, 중병 환자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 자체가 환자나 보호자에게 육체적, 심리적, 물질적으로 큰 어려움이다.

환자에게 종일 매달려 보살피는 보호자(단순 간병인이 아니라 환자의 병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가 있더라도 말이다.

대형 병원은 환자가 움직여야 하는 동선도 너무 길고, 과정이 복잡하다.

한 마을보다 더 넓은 면적에, 북적거리는 사람들에 치이면서, 다닥다닥 표지판들은 어지럽기만 하지.

지치고 아픈 환자들은 글씨가 눈에 보여도, 설명이 귀에 들려도 얼른얼른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또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진 환자를 이동하는 일도 어렵다.

나중에 어머니는 온몸의 뼈가 온전하지 않아서 몸을 잡을 데가 없게 되었는데, 그러면 이동은 고사하고 옷을 갈아입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 된다.


병원을 다녀온 날은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이 퀭해질 만큼 육체적, 심리적 에너지 소모가 극심하다.

그럼에도 환자에게 나타나는 이상 증상은 큰 병으로 진행하는 또는 위중함을 경고하는 중요한 단서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소한 증상도 대수롭게 여길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 사이에서 보호자는 갈등한다.

경험이 쌓이면서 당장 병원에 가거나 관찰하거나, 나름대로 기준을 세우지만, 결정은 늘, 어렵다.




* 환자 상비 품목


펄펄 날던 시절에는 내 마음에 따라 충실하게 움직여주어 활발한 생명력의 기반이 되었던 육신은,

이제 병의 토대가 되어 영혼까지 고통스럽게 한다.

오랫동안 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제멋대로 날뛰는 몸을 달래줄 몇 가지 도구를 갖게 된다.

(복용하는 약물은 병이나 증상과 싸워 이기는 걸 목적으로 하는지라 몸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

때로는 대결보다는 몸을 다독이는 평화스러운 방법이 필요하다.)

몸의 어딘가에서 통증이 고개를 내밀면 일단 손으로 문지른다.

‘엄마 손은 약손‘이라더니 마사지의 효과는 상당하다.

소화가 안 되어 배가 더부룩해도, 등이 아파도, 다리가 저려도.

먼저 손으로 살살 문지르거나 강약, 중간 약 리드미컬하게 마사지를 한다.

그리고 대표적인 할머니 냄새인 파스, 파스.

각종 연고, 핫팩, 찜질팩, 뜨거운 물수건과 냉찜질 팩도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는 도구들이다.

(최소한 뭔가 하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은 준다)


음식을 섭취하거나 중단하는 것도 유용하다.

어머니는 소화가 안 되거나, 체온이 불규칙하거나, 갈증이 심하거나 하는 몸의 이상에 따라.

섭식을 멈추거나, 따끈한 차 또는 시원한 음료(집에서 담그거나 그에 준하는 매실청, 레몬청 같은)를 달라 하신다.

어머니는 장기간 여러 병들의 치료약 때문인지 피부가 얇아지고 심하게 건조해서 몸의 피부가 벗겨지고 있는데,

통증 완화를 위해 몸을 살살 문지르다, 까슬거린 피부 건조에 도움이 될까 싶어 알로에 젤을 바르면서 마사지를 하게 되었다.

생 알로에, 바디로션, 보디 오일, 허브 오일로 마사지하면서 그 위에 바셀린을 덧바르기까지.

통증과 피부 건조에 대응하는 여러 방법을 쓴다.



노인이 되면 꼭 중환자가 아니더라도 배변 문제가 생긴다.

젊을 적부터 과민성 대장 증세로 배변에 어려움을 겪으셨던 어머니는

전문 병원도 다녔지만 치료가 되지 않은 채. 고령의 중환자가 되어 혼자 처리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했다.

처음 크게 실수를 하신 날, 어머니는 주저앉아 엉엉 우셨는데.

딸은 그냥 무심한 듯 걸레를 들고

"치우면 돼, 괜찮아, 엄마. 닦으면 돼. “라고 어머니를 달랬다.

어머니는 울면서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하셨는데.

두고두고 그 날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괴로운 마음이었는데 네가 해준 위로가 나를 구했다고 말씀하신다.


배변을 스스로 해결 못 하게 되면 노인들은 수치심, 자존심 문제를 넘어 스스로 죽음을 생각할 만큼.

쇠약해진 몸과 마음에 치명타가 된다.

자신은 이제 더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자식이나 타인들에게 폐를 끼치는 쓸모없는 짐 덩어리라며 스스로 존재를 부정한다.

태어났을 때는 무력한 아기였는데 오랫동안 자립하는 어른으로 살아온, 정신은 말짱한 노인이.

다시 무력해진 신체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은 (자식이나 이를 처리해줘야 하는 타인보다)

그 누구보다 당사자에게 저주이다.

자식들은 부모의 이런 모습에 실망하거나 걱정이 클 수는 있겠지만,

사람이 늙으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단계로 여기고 호들갑스럽지 않게 부모의 현실을 받아들이면 좋겠다.

괜찮다고, 우리 엄마 괜찮다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걱정 마시라고.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정면에서 비난받거나 조롱당하면,

(여간한 사람이 아닌 담에는) 심신이 지치고 허약해진 노인들은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도리어 공격적인 대응을 할 수도 있다.

어머니의 경험을 통해 노인들이 겪는 몸의 변화에 우리 사회가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밥, 밥,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