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우리 집 밥상은

어머니가 차리셨던 밥상

by 기차는 달려가고

내 어릴 때 우리 집은 아버지가 하시던 병원과 붙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하루 세끼, 우리 일곱 식구에 병원 식구들, 얼굴을 바꿔가며 누군가는 늘 있었던 멀고 가까운 친척들과 밥때만 되면 나타나는 손님들까지.

한 부대가 먹을 밥상을 차리셔야 했다.

(더해서 아버지가 입원환자를 받지 않기로 결정하시기 전까지.

병원 입원 환자들의 환자식까지 준비해야 했던 절대 짧지 않은 기간이 있었다.)


아버지는 최소한 저녁 식사라도 가족 모두가 밥상에 둘러앉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진 분이셨다.

바깥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날도,

아버지는 사 먹는 음식은 어째 영~, 하시며 미리 드시고 가시든지 아니면 늦게라도 집의 밥을 드시곤 하셨다.

나는 대학 1학년 때 학교 합창단 활동을 해서 저녁에 연습이 있었는데,

수업이 끝나면 일단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다시 연습하러 학교로 가기도 했었다.

나 역시 밖에서 먹는 음식은 어째 영~하는 부류였던 것이다. (그 팔팔한 시절에조차 말이다.)


겉모습에 소탈한 아버지는 음식에는 유난하셔서 맛뿐 아니라 정갈하고 공들인 밥상차림까지 민감하셨으니.

어머니는 늘 새로운 찬으로 매끼 따듯한 밥상을 차려 내셨다.



* 밥상 풍경


식사 시간에 맞추어 부엌에서는 분주히 밥상을 준비한다.

학교에 다녀와 가방을 던지고 방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던 아이들은 시간이 되면 안방에서 아버지를 기다린다.

쪽쪽 찢은 장조림에, 밥솥에 쪄낸 부드러운 가지는 갖은양념으로 무쳐서.

살 오른 갈치는 맑게 지져내고, 잘 익은 김치 두어 가지, 양념한 명란젓에 간장 종지.

들기름을 발라 솔솔 소금을 뿌려 슬쩍 구운, 반듯반듯 자른 김은 움직이지 않게 이쑤시개를 꽂고.

빼곡히 반찬이 오른 사각 밥상이 안방으로 옮겨지면 아버지께서 성큼 방으로 들어오신다.

아버지 자리하시면 소고기와 무를 납작납작 썰어 끓인 달큼한 소고기 뭇국과

손 대기 뜨거운 스테인리스 주발에 담긴 강낭콩 얹힌 밥이 상에 올려진다.


자리에 앉으신 아버지 먼저 밥주발 뚜껑을 여시면 우리도 소매 끝을 길게 당겨 뜨거운 뚜껑을 열어 뒤집어 내려놓고.

아버지 국물 한 술 뜨시면 우리도 한 술,

그 뒤에 밥 한 숟가락, 반찬 한 젓가락 순서로 식사는 시작되었다.

상 모서리에 앉지 마라, 천천히 꼭꼭 씹어야지. 수저는 같이 들지 않아야 하고,

밥은 숟가락으로 찬은 젓가락으로 뜰 것이며.

입안에 음식은 다 넘기고 말해라.

상 위에 놓인 반찬은 골고루 먹고,

밥그릇은 깨끗이 밥을 남기지 않을 것이며.

음식 넣고는 입 벌리지 말고 먹는 소리는 내지 않아야 한다고

밥상머리에서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에게 누누이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자식들이 식사하는 동안 곁에 앉은 어머니는 할머니와 함께 하기 위해 당신 식사는 뒤로 미루시면서 우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시고.

고기를 잘게 뜯든지 생선가시를 발라 주시면서 국도 더 내오시고 찬이 빈 접시는 얼른 치우시면서 식사를 보살펴 주셨다.

맛있는 찌개가 상 한가운데 오른 날이면 먼저 찌개 국물 한 입 뜨신 아버지는, 아 맛있다 먹어 봐라, 아이들 앞으로 밀어주시고.

수육이니 전이니 안주에 좋은 찬이 상에 오르면 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맥주 내오라 하시고는

한두 잔에 금방 얼굴이 붉어져 '술 냄새 안 나니?' 난처하신 표정으로 우리에게 묻곤 하셨다.


마지막 숟가락 드실 때쯤 어머니가 들여오시는 따끈한 숭늉까지 개운하게 드시고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시면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오신다.

아버지가 앉으셨던 자리를 치우고 할머니 진지가 올려진다.

어쩌다 우리가 음식을 남기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 셨던 할머니께서는 '죄로 간다' 놀라시며,

당신 식사 시작하기 전 우리 자리에 떨어진 반찬 부스러기와 밥알을 먼저 손바닥으로 치우셨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밥상에는,

우리 집에 늘 한 둘씩은 머물던 여자 친척들, 간호사 언니들, 그렇게 집안의 여자들이 번갈아 함께 했다.

조금은 어려웠던 아버지의 밥상과 다르게 깔깔 웃음소리가 즐거운 여자들의 밥상머리에 이미 배가 부른 우리는 눌러앉아서,

오가는 재밌는 이야기 귀를 쫑긋하다 참견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 마음이 풀어진 아이들이 다리라도 길게 뻗을라치면 어머니는,

'할머니 진지 드시는데 이게 무슨 버릇없는 짓이냐고 나무라셨지.



* 우리는 늘 최상일 수는 없다


우리 집 밥상이 언제나 화기애애하지만은 않았다.

아버지는 바깥에서 일어난 일을 한 몸으로 막아 내지는 못 하시는 분이어서, 언짢은 일이 있는 날이면 찌푸린 얼굴을 펴지 못하고 밥상을 받으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탱탱하게 당겨진 신경을 건드릴까 가만가만 움직이시고,

우리들은 아버지 기분에 거슬릴까 바짝 얼어서 조심조심 수저만 옮긴다.

울그락 불그락 미간을 펴지 못한 채 수저만 움직이시던 아버지.

맛있는 밥상이 속을 풀어 주었는지,

몇 잔 들이켠 반주가 마음이 달래주었는지 비로소 긴장한 아내와 자식들이 눈에 들어오면.

일순 멋쩍은 표정으로 슬며시 농담을 건 네시는데.

그제야 아이들은 봇물이 터진 듯 막힌 숨을 풀어 재잘재잘 말문을 열었다.


뿐인가.

가끔보다는 좀 더 자주, 늦은 밤 안방에서는 높은 언성이 있곤 하였다.

다음 날 아침이면 아버지는 굳어진 표정으로 어머니가 들어오지 않는 밥상을 아이들과 함께 받으시는데.

학교에 가 있는 내내 나는 걱정으로 불안해하다가 먹구름이 물러나 있기를 바라며 수업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온다.

하지만 안방에서 밥상을 받는 딱딱한 아버지의 표정이나 부엌 조리대 앞에 등 돌리고 서 있는 어머니 앵 돌아간 태도는 달라진 게 없다.

그렇게 한동안 아버지와 아이들만 마주 앉아 묵묵히 수저만 움직이는 답답한 밥상을 받다가.

아버지가 우리 편에 쪽지를 보내 어머니와 시내에서 협상의 자리를 마련하기까지.

그 자리가 성공적이어서 평상을 되찾기까지 길거나 혹은 짧았던 며칠 동안.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꼬박꼬박 제시간에 우리를 앉혀 놓은 밥상에서 당신의 자리를 지키셨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는 방식으로 풀리지 않는 화를 표현할지라도 안방에 들여보내는 밥상에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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