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는 밤에 런던 거리를 몇 시간씩 걸어 다녔던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종일 혼자,
책상 앞에서 책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작가나 학자들 중에 걷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은 것 같다.
물론 혼자 걷기다.
걷고 또 걸었다는 니체는 떠돌아다니는 곳마다 자신의 산책로를 만들었고.
걷기를 좋아해서 독일에서 스위스의 집까지 걸어올 정도였던 작가 로베르트 발저는 죽음마저도 산책 중에 맞았다.
철학자는 숲과 들판과 도시를 걸으면서 인간과 사회를 고찰하고.
작가들은 걸으면서 작품 속 인물과 이야기를 구상한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인 걷기는 세파에 치여 뒤죽박죽이 된 사람을 근본으로 되돌려놓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걷는다는 행위는 규칙적으로 근육을 움직이는 것에 더해,
시각적으로, 청각과 후각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보와 자극을 감지하며.
그렇게 주변의 것들은 걷는 이의 마음에 크고 작은 반향을 일으키고,
머릿속에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
단순한 육신만의 움직임이 아닌 것이다.
찰스 디킨스는 런던의 밤거리를 한없이 걸으면서,
고된 일과로 피로에 지쳤으나 잘 곳이 없어 밤거리를 하염없이 걷는 노동자들을 보았고.
(당시 런던에서는 시민들이 거리에 앉는 것을 금지했단다.)
가엾은 소녀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가혹한 현실에 통곡했으며.
그래서 작가는 이른 나이에 크게 성공한 뒤에도 맑은 시선으로 영국 사회의 부조리와 이기심을 힘차게 고발할 수 있었다.
작가 W. G. 제발트는 영국 동부 해안을 혼자 걸었던 행선지에 축적된 사건들을 풀어내며 현대에 이르는 인간사의 어둠을 통찰하는 작품을 썼고.
일본 근대소설가인 나가이 가후는 에도 시대의 도쿄, 그중에서도 에도시대 서민들의 거리인 시타마치 지역을 걸어 다니면서 지난 세월의 정서를 찾아냈는데.
스러지고 퇴락해 가는 당시 도쿄의 뒷모습인 시타마치에서,
작가는 에도 시절 활기찼던 시타마치 서민들의 삶을 아련한 향수로 그려냈다.
60년이 넘는 시간을 서울에서 살아왔지만 여전히 내가 아는 지역은 서울의 일부분이다.
꼬맹이 시절의 나,
교복 입은 학생 시절의 나,
젊었던 나,
나이 들어가는 내가 일정한 면적 안에서 폴짝폴짝 뛰다가 걷다가 하였으니,
장소에는 시간이 중첩되어 있구나.
가끔 타임머신을 탄 듯, 익숙한 거리에서 순간적으로 일종의 착란이 일어나는 기분을 느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 거리를 걸었던 꼬마가 내 안에 여전하여서,
옛날과 현재라는 시간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백수로 지내면서 우리는
거리와 자연을 터덜터덜 걸어 다닐 만한 시간과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두리번두리번 혼자 길을 걸으면서 주변을 살피고 나의 내면 깊숙이로 들어가 보자.
혼자 천천히 걷는 행위만으로도 백수의 시간은 축복이 될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