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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Sep 02. 2023

손쉽게 차려먹은 아침밥, 42편, 주말의 포만감

아침을 맞이하는 의례

눈은 떴지만,

정신도 들었지만.

어제가 오늘 같은 백수라 해도 주말은 기분이 달라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초가을 풍의 선선함을 만끽하면서 가만히 누워있었다.


음, 어, 배가 고파지네,

먹자니, 몸을  일으켜야겠군.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서,

있는 걸 찾아 주섬주섬 차려봅니다.

소고기죽을 꺼낸다.

지르르르, 전자레인지에 2분 돌리고요.

그 사이 냉장고에서 고추장에 버무린 매실장아찌도 꺼냈다.

먼저 어젯밤에 끓여 미지근해진 보리차 한 잔 쭈욱 들이켜고요.

매실장아찌 한쪽(담기 전에 매실을 갈랐으니 사실은 반 쪽),

따끈해진 죽 한 숟가락, 요렇게 무한반복.


죽 먹는 동안 펄펄 끓인 물로 디카페인 커피를 내리고요,

쌉쌀한 다크초콜릿을 꺼냈어요.

커피 한 모금,

똑똑 부러뜨린 초콜릿 한쪽.

커피가 모자라서 반 잔쯤 더 내리면서

결국 초콜릿 한 판을 다 먹어치웠다.


사과를 깎는다.

은은한 향기에 사각사각한 감촉.

한 입 베어무니 은근하게 달콤한 물기가 가득하고.

반쯤은 싱그러운 햇사과를 즐기다가,

고다치즈 덩어리를 가늘게 칼로 잘라 사과 한 입에 치즈 쬐금씩 뜯어먹었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하고 오늘은 외출을 하자.

서둘러야 하는데,

눈은 유튜브로 제갈량의 흔적을 더듬고 있다.

등용되기 전 제갈량은 농사를 지으면서 학문을 닦았단다.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때까지

아무리 뛰어난 영웅이라도 갈고닦는 지루하고 막막한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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