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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Sep 10. 2023

친정엄마가 내 자식을 키워줄 때

끄적끄적

갑자기 예전에 만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어떤 분이 떠올랐다.

잘 지내시는지,

걱정거리는 나아졌는지.

끔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 마음이 쓰입니다.

내 또래 분이었는데.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버럭버럭 성질만 부려대는 아버지 밑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었던 그분은,

집에서 나오기 위해 이른 나이에 나이 차가 많은 남자와 결혼했다.

우리 세대에는 결혼이 거의 유일한 독립 수단이었거든.

그렇게 결혼한 남편은 협력이나 대화가 불가능한 일방통행이었다.

온갖 노력을 했으나 결국 남편과의 화목은 포기하고,

열심히 아이들 키우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경제적인 독립을 준비했다.

딸들이 결혼하면 곧 이혼하고 고향에 돌아가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작은딸이 오랫동안 사귀던 연인과 결혼 날짜를 잡자,

큰딸이 갑자기 자기가 먼저 결혼한다고 했다.

몇 달 만났다는 그 남자는 엄마가 보기에 영 아니어서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결정하기를 권했지만 막무가내.

그렇게 두 딸이 한 해에 결혼하고,

수시로 말을 바꾸는 남편을 설득하는 조마조마한 시간을 거쳐 드디어 이혼할 수 있었다!


계획 대로 고향에서 사업을 시작해 순조로운 새 출발이 되나, 싶었는데.

큰딸은 갓 낳은 아기를 데리고 친정어머니를 찾아왔고,

무책임한 남편에게서 양육비 한 푼 못 받고 힘들게 이혼한

딸과,

아버지라는 사람이 오히려 기쁘게 친권을 포기했던 손주는 고스란히 친정어머니 몫이 되었다.

이혼한 딸은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서

자기는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어린 딸을 키우는 불쌍한 여자라고 떠들고 다니는데.

손주 돌보는 건 오로지 친정어머니어서

아이를 깨우고 씻기고 밥 먹이고 옷 입혀서 어린이집까지 차에 태워가는 동안,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인사도 없이 쿨쿨 잘 뿐이었다.

걸핏하면 미친 듯 성질부려대고.

아이 양육, 생계, 살림 몽땅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는 하루종일 휴대폰만 붙들고 있다.

내 팔자는 왜 이 모양이냐고 하소연하고 싶은 건 난데,

자기 아이를 성가신 막냇동생쯤으로,

또는 자기 인생의 걸림돌로 취급하는 큰딸이 이제는 무섭다, 고 했다.

아이는 내가 키우겠으니 너는 나가서 취직을 하거나 결혼을 하라면,

내게서 아이 뺐으려 한다고 행패 부리고.

마음이 괴로우니 병원에 가자고 설득하면 나를 미친 여자 취급한다고 날뛰는 딸.

아버지에게서도, 남편에게서도 도망쳤는데

자식에게서는 도망칠 수가 없다고.

쟤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요?, 딸 걱정하며 우시더라.



이런 경우가 아니라도 친정어머니에게 자식 양육을 맡기는 많은 딸들이,

자기는 여전히 아가씨다운 생활을 하면서 친정어머니가 귀찮고 힘든 일을 도맡기 바란다.

외식할 때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나간다고 인스타에 올리지만,

젊은 부부는 맛있게 밥 먹고 웃으면서 사진 찍는 동안,

아이 밥 떠먹이고 날뛰려는 아이 둘러업고 식당 밖으로 나가는 건 언제나 친정어머니.

아이가 남긴 음식찌꺼기나 쓰게 삼키고 친정어머니의 외식은 끝나버리지.


친정어머니를 내 인생의 도우미로 이용하지 말라.

조부모가 아이를 키우면 얼마 준다는 정책도 나는 반대한다.

차라리 남의 아이를 키우면 정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지만,

손주 키우고 몇 푼 정부에서 받은들 그 돈은 고스란히 자식과 손주에게 돌아가고,

남는 건 병든 몸과 지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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