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어느 날,
학교에서 동아리 선배를 마주쳤는데.
울상을 지으며 내일 군대 간다고 하더라.
어머, 속상해라, 잘 다녀오세요!
군대 안 가는 내가 그 심정을 어찌 알겠는가,
그저 의례적으로 인사치레나 했겠지.
선배는 군대 가서 내게 편지 보내도 되겠냐 물었고.
요새 아이돌처럼 매우 매우, 눈에 띄게 잘 생겼던 그 선배에게 나는 생글생글,
그럼요, 하면서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다른 애들한테는 '학교로 보내~' 했으면서 말이지.
얼마 뒤 보통의 군인아저씨 같은 편지가 왔던 것 같다.
읽어는 봤겠지.
그때 나는 몹시나 바쁘던 청춘이라 편지 건은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 그 선배가 군대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죽임을 당한 건지, 죽음으로 몰렸던 건지, 아무도 실상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1980년 대 초, 군부독재 시절.
그저 개죽음이었다.
그러고 한참 지나서 정말 오랜만에 책상을 뒤집는 대청소를 하다가 선배의 편지를 발견했다.
다시 읽어본 무덤덤한 편지 끝에는
'답장 기다릴게.
네가 편지를 보내준다면, 나의 군 생활이 조금은 덜 힘들어지겠지.' 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네.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퍼지는 미안한 마음.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거라면 재미있는 답장을 보내서 고달픈 군인 아저씨 마음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 주었을 텐데.
무심했던 지난날의 나를 자책했었다.
되도록 남들에게 친절하려 한다.
내가 원래 친절한 사람이 결코 아니고
배려 없는 한두 마디 독설로 남의 속을 뒤집어놓는 타입인데.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든 건지
속으로는 좋든 싫든,
마주하는 동안은 좋은 낯으로 좋은 말을 하려 한다.
함부로 쓴 돈은 나중에 아까워지지만,
남에게 친절했던 나의 행동은 시간이 지나도 아까울 게 없더라는 세월의 교훈을 얻은 터라.
그런데 나의 언행이 종잡을 수 없어서인지,
인간 심리가 복잡해서인지,
나의 작은 친절이 상대방에게 일으키는 반향은 각각 다르다.
그저 언행이 약간 친절했을 뿐인데,
남녀 상관없이 그 친절을 과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머낫, 깜짝이야!
그러면 짜증 나면서 동시에 자신을 책하게 되지.
단지 오해,
내지는 상대가 유난히 외로운 상태였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사람이 그리 일관성 있는 건 아니라서
나의 언행이 시시각각 들쭉날쭉일 수도 있고.
나는 일관성이 있었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이 제각각이라,
반사율이 굴절되거나 왜곡되거나,
오목거울이거나 볼록거울이거나 미처 다 헤아릴 수는 없는 거다.
살아가면서 인생은 고해,
세상은 지옥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고 점점 비관적인 판단이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오해와 왜곡이 있으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또 얼마나 남의 진실을 제멋대로 왜곡하는가.
친절도 어렵고,
무심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철벽을 쌓고 그 뒤에 숨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