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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Sep 07. 2023

널려 있는 물건들

끄적끄적

살아갈수록 뭐 대단한 걸 이루기는커녕,

자신이 저지르는 일의 뒤처리도 쉽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별다른 게 아니다.

이를테면 자고 일어나서 어질러진 잠자리를 정리한다던가,

밥을 먹고 나면 먹은 자리를 깨끗하게 치운다거나,

내가 떨어뜨리고 다니는 머리카락을 치운다거나, 하는 것들.


옷을 입었으면 빨래를 하고,

빨래를 했으면 거둬서 반듯하게 펴서 제자리에 넣거나.

냉장고를 정리하거나,

문을 열었으면 닫는다거나.

쓰레기를 제때제때 버리고,

벗은 신발은 정돈하는 사소한 것들 말이다.

그게 안 되는 사람이, 집이 적지 않다.



그렇게 자잘한 것들도 제대로 못해내서 금방 쓰레기집을 만드는데.

뱉은 말에 책임을 지고,

약속은 지키고- 같은 어려운 일은 더구나 실행되지 않는다.

일에는 단계가 있고.

쉬운 단계부터 실행이 잘 되어야 더 높은 단계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자기 신변 정리도 제대로 못하면서 대단한 어떤 것을 하느라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는 입장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마찬가지로 나는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사람이라 자질구레한 일들은 저렴한 임금으로 다른 사람을 '부린다'는 입장은 더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제대로 대우하며 부탁한다'면 모를까.


확실히 피곤하거나

의욕이 없거나

무기력하고 우울할 때 정리정돈이 힘들다.

반대로 주변이 정리정돈 안 되면 우울해지기도 한다.

농기구를 때마다 닦고 손질하면서 나란히 정리하는 농부가 있는가 하면,

되는대로 던져두었다가 다시 쓸 때 찾느라 고생하고,

기구가 녹슬었다고 장비 탓을 하는 농부도 있다.

어쨌든 농사만 지으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면.

깨끗하게 닦인, 잘 정리된 농기구를 손쉽게 꺼낼 때와,

매번 엉망진창으로 놓인 농기구 더미를 뒤집어서 썩어가는 기구를 찾아내야 하는 사람 심정이 같겠는가?, 묻고 싶다.



사람도, 재물도, 소유물도, 많이 갖는 것보다는.

내가 너끈히 관리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유익하게 쓰고,

잘 관리하는 편이 의미가 있다.


길고도 더운 여름이었는데,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살 만해졌다.

슬슬 여름 물건을 정리할 때.

한겨울이 되도록 선풍기가 거실에 구르지 않도록,

더울 때 사용했던 물건들은 고마웠다, 인사하고.

꼼꼼히 손질해서 잘 넣어두었다가 내년 여름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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