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차는 달려가고 Oct 13. 2023

진상 대처방법 하나

끄적끄적

길에서 떼쓰는 (처음 보는) 아이들을 달랬던 경험을 쓴 적이 있다.

우는 애들 일에도 나서지만 대중교통에서 행패 부리는 사람들을 나서서 저지하기도 했다.

나, 무서운 거 없는 사람임.

여러 번 겪었는데 그중 하나 풀어볼까.



퇴근시간이 지나 어둡기는 했지만 늦은 밤은 아니었을 때,

혼자  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거의 20년 전인가.

버스에는 승객이 드문드문 앉아있는 정도였는데,

중년남자 하나가 버스에 올라오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 돈을 흘렸다.

자기가 술에 취해 비틀거려 생긴 일인데

또르르 굴러가는 동전들을 집더니 기사분께 가서 냅다 소리 지르고 주먹질 해대면서(폭행한 건 아니고 위협을 했다),

운전을 잘못해서 자기가 돈을 떨어뜨렸다고 억지를 부리는 거다.

둘러보니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젊은이도 다들 고개를 돌리고 숨 죽은 듯 고요한 상태.

부당함에 침묵하며 몸 사리는 비굴한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하는 나는,

더하여 취객의 행패를 혼자 받아내며 운전해야 하는 기사분의 외로움까지 느껴지면서.

그 취객에게 소리를 꽥 질렀다.

사고 나면 책임질 거냐고.

그랬더니 이번에는 내 앞으로 와서 우산으로 때릴 듯 위협하며 지룰지룰.

그렇다고 겁먹을 내가 아니지.

끝까지 나서서 상대를 제압하고 말았다.

(몇 정거장 사이의 일이다.)

내가 버스에서 내릴 때,

잠잠해진 진상에게 경찰서 가자고 버스를 내리도록 했고.

(내가 없으면 다시 기사를 해코지할까 싶어서)

행패 부릴 때의 기세는 어디 가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어둠 속으로 부리나케 도망가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저 사람은,

사실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숨죽이고 피하는 게 아니라 잘못됐다고 자신을 제지해 주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곤욕을 치르면서 진상을 상대하는 동안 버스 승객들은 모두 '나 없어요', 잠잠했었지.


나의 진상 대처 방법은 기세로 제압하는 거다.

남자들은 사회생활 경험 때문인지 진상들이 날뛰어도 거의 나서지 않는다.

사실 나선다 해도 싸움만 되지 효과는 별로 없을 거다.

진상이 여자든 남자든 여자가 나서서 제지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그런 진상들은 어머니든 부인이든 여자에게 혼난 트라우마가 있는지 여자들이 눈 똑바로 뜨고 따따따따, 속사포처럼 야단치면 일단 흠칫한다.

진상들은 또 물리적인 면에 약해서 앉았을 때는 모르나 일어서면 갑자기 키가 커지는 내가 유리한 점이 있다.

벌떡 일어나 똑바로 쳐다보면 두 번째로 흠칫한다.

세 번째는 나이가 대체 몇인데 그 모양이냐고 따지는 거다.

내가 나이보다 적게 보인다고 쓴 적이 있는데,

물리적인 면에 약한 진상들은 나이 따지는 게 효과 있었다.

말끄러미 쳐다보면서 도대체 그 나이 먹도록 왜 그러냐고, 내가 1960년 생이거든요, 하면 상황은 종료된다.



옳고 그름, 도덕이나 예의 같은 건 전혀 탑재되지 않고,

오직 돈이나 힘 같은 물리력의 강약에만 반응하는 부류가 분명히 있다.

런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할 때,

피하거나 굴종하거나 점잖게 대해주면 아, 여기가 오늘 내가 날뛸 곳이로구나, 하면서 더 기세등등해진다.

유치하지만 상대의 수준으로 내려가서 대해줘야 한다.

내가 운이 좋아서 진상 앞에 나서고도 여태 무사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잘못 앞에 굴종하는 건 자존심 상하지 않나?

따지기라도 해야지,

왜 잘못이 날뛰게 가만 두는지.


그러나 나의 존엄도 소중하니까요,

끝까지 존댓말로, 아무리 화나도 욕설 같은 건 입에 올리지 말고요.

일관성 있게, 확고한 태도로 잘못에 항의하는 센 언니 포스를 팍팍 내뿜는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건이 쌓인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