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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Nov 08. 2023

문화의 유행

끄적끄적

날이 추워지면 내게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계절이 돌아온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몸을 씻고 방에 들어와 자리에 누우면 안도감이 든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쳤구나, 하는 일종의 해방감 또는 자유로움.

기껏 한 일이라고는 내 입에 들어갈 음식 만들고 내가 사는 집을 치운 것뿐인데요.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문득 성가를 듣고 싶어 진다.

어둠 속에서 동그라니 노란 스탠드를 켜놓고 그레고리오 성가를 틀어놓고 가만히 누워있는다.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오늘도 성가를 들으며 잠이 들려는데,

수도사들이 부르는 길고 긴 성가는  변성기 전 어린 소년들이 부르는 노래로 이어지네.

참으로 곱디고운 목소리,

어우 예뻐라, 하며 듣다가.

겨울이면 우리나라를 찾아 공연했던 '빈소년합창단'이나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을 올렸고.

기억은 공연을 주최한 신문사들의 광고성 기사들과  공연장이었던 '시민회관'으로 이어졌으며.

그들의 공연을 녹화 방영했던 TV 프로그램과,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나왔던 197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문화계를 기억에서 불러냈다.


문화에도 유행이 있다.

한때 붐이 일다가는 썰물처럼 빠지고 다른 형식이 밀려들어온다.

1970년 전후해서는 소년합창단이 유행했다.

(우리나라의 선명회 합창단, 리틀앤젤스로 이어진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여전히 가난했지만 희망이 있었고 낭만이라는 걸 간직했었다.

연말연시에는 명동이나 종로에 사람들은 그 추운 날씨에 낡고 얇은 외투를 걸치고는,

인파에 한없이 떠밀려 다니면서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럴을 들었지.

기껏해야 커피숍이나 경양식집 돈가스로 한껏 멋을 부리면서,

어린 소년들이 부르는 맑은 노래에 열띤 박수로 호응했다.

통기타와 팝송이 청춘들의 문화였다면,

소년합창단은 신세대 가족의 문화였달까.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어머니와 둘이 남은 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가까운 교회로 자정예배를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고.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다가 새해가 시작되는 자정에 쾅, 하면서 시작되는 심야음악회에 가기도 했었다.

그렇게 몇 시간 음악으로 기분이 좋아져서,

모녀는 흥얼흥얼 노래 부르며 광화문 밤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지.


오늘밤도 나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었고요.

기분 좋았습니다.

모두들 고달픔은 내려놓고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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