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왕

by 기차는 달려가고

여행을 가면 웅장한 건축물들을 지치도록 보게 된다.

서구권은 석조, 아시아권은 주로 목조로 된 대규모 건축물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왜 인간은 이렇게 경쟁하듯 사라지지도 않는 흔적을 깊게 남겨서 내 다리를 아프게 하는가?

한탄이 절로 나온다.



타이베이 여행을 갔었다.

30년 전쯤의 일이다.

여행 안내서에 따라 볼 만한 곳들을 순례하고 맛있다는 음식을 고.

둘레둘레 거리를 걸으면서 며칠을 보냈다.

도시는 화려하지 않았고 멋스럽거나 역사가 보이지는 않았다.

현대의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일상을 담은 실용적인 모습이었다.

초봄이었는데 부슬부슬 비까지 내려서 첫인상으로는 도시가 우중충하게 느껴졌다.


용산사에서 주변을 뿌옇게 덮은 짙은 향의 매캐한 연기에 깜짝 놀랐는데.

연신 허리를 굽히며 향을 꽂는 사람들을 바라보려니,

불안하게 흔들리는 삶의 굴곡에

근심을 덜고 안정을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나는 그때 대단한 규모로 새로 지어진 기차역에서 중국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는데.

그 옆, 쓰러질 듯 낡은 버스터미널과 대비되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그때 짐작하기로 중국인들은 낡고 허름해도 거리낌 없이 시설을 사용하지만.

일단 새로 짓게 되면 천 년이 가도 끄떡없을 엄청나게 크고 대단한 건물을 짓나 보다, 생각했었다.


전쟁으로 대륙에서 넘어온 사람들과 원래 타이완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갈등을 그 시절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으니.

타이완의 독자성에 대한 인식도 그때는 없었다.



타이베이의 관광지로 박물관과 함께 중정기념관이 있다.

장개석은 내가 자랄 때 신문에 종종 나왔던 인물이었다.

타이완과는 국교가 있었지만 중국과는 교류가 없던 시절이니,

중국의 정통은 장개석 정권으로 이어지는 듯 알고 있었다.

그 장개석을 기념하여 세웠다는 중정기념관에 갔다.

어딘가 다른 곳에 먼저 들렀다 갔기 때문에 이미 몸이 피곤한 상태였다.

구체적인 정보 없이

관광 포인트라니 가봐야지? 그런 태도.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길을 찾아 중정기념관에 도착해보니.

거대한 공간과 위압적인 건축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넓은 광장을 지나 높은 건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있었는데.

이미 지쳐있던 터라 오를까 말까, 했지만.

뭐든 하나라도 더 보는 게 여행자의 임무이니,

꾸역꾸역 끝까지 올라갔다.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크고 높은, 오는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계단 오르기를 강요하는 그 끝에는 덜렁 거대한 조각상 하나... 휴.

몸이 힘들어서 더 그랬겠지만 울컥 불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강요되는 권위에 반항심을 느끼는 사람이고,

힘으로 존경을 요구하는 권력에 거부감을 갖는 성향이었다.

우리도 박정희라는 인간 위에 있는 인간을 겪어보지 않았는가?


고대의 왕도 아니고, 20세기에!

사후, 전제 권력의 왕릉을 흉내 낸 기념관으로,

고인과 상관없는 나에게까지 수고를 요구하는 것은 참 고약스러운 심보였다.


며칠 타이베이를 둘러보면서 좋기도, 불편하기도 한 여러 소감이 있었는데.

중정기념관 방문 이후 내게는,

견제받지 않는 구시대적인 권력이라는 부정적인 인상이 또렷이 기억에 새겨졌다.



이후 타이완도 사회, 정치적으로 여러 변화를 겪었다.

뉴스에서 타이완 소식을 들으며 중정기념관과 그 건축물을 지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상상한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

우리나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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