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초였나?
독일을 여행하면서 서베를린에 갔었다.
그때 독일은 동, 서 분단 상황이었는데,
세계대전 이전에 독일의 수도였던 베를린도 동, 서베를린으로 나뉘어 있었다.
동독 영토 안에 있는 서베를린은 섬처럼 고립돼 있었고,
나는 뮌헨에선가, 밤기차를 타고 서베를린으로 출발했다.
밤새 동독 영토를 지나가는 노선이었다.
기차는 어둠 속에 출발했다.
일단 동독 영토에 들어서면 서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하기까지 승하차할 수 없었다.
유레일패스 2등석 표를 살 수 있는 나이를 이미 넘었기에 나는 그때 1등석을 탔었는데,
내가 앉은 객실에는 아무도 타지 않아 혼자 6인실 객실을 차지했다.
공산주의, 북한... 이런 단어만으로도 몸이 오싹할 만큼 철저한 반공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해외 출국자는 소양교육을 받아야 했던 그 시절에.
주변에서 동베를린 사건으로 지독한 고초를 겪은 아버지 지인들을 보았었다.
그래서 나는 금단의 지역, 공산주의 동독 영토를 지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살짝 흥분되어 있었다.
불빛으로 밝았던 서독 지역을 지나 동독 영토 안으로 들어서자 불빛 없는 캄캄한 밤.
창밖에는 어둠뿐이었다.
동독의 일단이라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창에 눈을 바싹 붙여 봤지만,
기차는 빠른 속도로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질주했다.
불이 희미하게 켜진 동독의 기차역을 몇 번인가 지나쳤지만 어떤 것도 식별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는데 거칠게 문을 여는 소리에 깨났다.
동독 이민국 관리였다.
지극히 거만한 표정과 뻣뻣한 자세로 출입문을 꽉 채운 관리는,
강한 독일 엑센트의 영어로 여권을 달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여권을 꺼내 주고 그가 여권을 살피고 내용을 기재하는 동안 긴장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묻기도 했던 것 같다.
나를 설명하고 증명할 언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위에는 내 편인 사람 하나 없이 캄캄한 어둠 속, 고립된 기차 안에서
이 고압적이고 퉁명스러운 공산주의 관리와 대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위축시켰다.
아무리 내가 겁 없이 동서남북 휘젓고 다닌다지만,
이 생소한 분위기에서 마음 편할 수는 없었지.
특유의 기세와 억양으로 여권을 돌려주고 기합이 세게 들어간 인사를 하며 떠나기까지 잠깐.
처음 마주친 공산주의에 나는 숨 죽이며 겁먹은 자세로 당황해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런 자세가 낯선 것은 아니었다.
관리의 권위주의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는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서도 만연했었다.
공산주의는 아니어도 일제 강점기와 오랜 군사독재 체제 하에서 특히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직업군은,
평등이라든가 부드러움이라든가,
서비스 정신 같은 건 탑재하지 않았었다.
나는 위, 너는 아래.
자신이 맡은 당연한 업무를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 권위적이었다.
체제 안의 개인은 그 체제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뻣뻣하고 위압적이었던 그 동독의 관리도
개인적으로는 좋은 사람, 자상한 아버지일 수 있었겠지만.
사회인으로서 그는 위에서 내리누르는 체제의 무게를 혼자 감당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독에서 마주친 부드러운 억양과 미소를 띠었던,
업무에 재량권을 가진 직원들과 확연히 비교됐던 딱딱한 동독 이민국 직원은.
얼마 뒤 독일이 통일되고 체제가 바뀌면서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