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의 툭툭

by 기차는 달려가고

이번 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해외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여행 관련 산업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여행 관련 인프라도 질과 양 모두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틈만 나면 가깝고 먼 나라로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몇 년씩 장기 여행을 하는 분들도 상당수가 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여행자들이 많이들 당황하는 것 같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여행 여건과 심리가 언제나 회복될 수 있을는지...

어쩌면 해외여행 방식은 해외여행이 재개될 때쯤에는 달라져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회적 양상들과 함께.



오래전에 태국 방콕에 여행 간 적이 있었다.

방콕에 서구와 일본 관광객이 많던 시절이었다.

더위에 맥을 못 추는 체질이라 뜨거운 햇빛과 높은 습도는 나를 한없이 지치게 했지만.

여행 안내서 하나 손에 들고 상당히 씩씩하게 배도 타고, 시내버스도 타면서 잘 다녔다.


곳곳에 들어찬 뾰족하고 화려한 사원들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리 좋다는 느낌은 못 받았지만.

숙소나 가게에서 마주치는 순한 표정의 태국 사람들이

빙그레 웃음 띄며 두 손 모아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참 곱고 예뻐 보였다.



그때 나는 허영심과 욕심이 겁 없이 뻗어나가던 서른 언저리로,

좋아 보이면 갖고 싶어 하던 때였다.

일몰이 멋진 짜오프라야 강변에 있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은 꽤 고급스러웠는데.

20세기 전반에 유명한 소설가들이 머물렀다는 얘깃거리까지 나를 살살 흔들어,

다음에 올 때는 그 호텔에 묵고 싶었다.


또 정보요원 출신에,

질 좋은 실크 제품을 생산하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업가이면서.

정글에서 사라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추리소설 같은 사연의 짐 톰슨이 살던 집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식물들이 우거진 너른 부지에 여러 채의 목조건물들이 늘어서 붉은 저택은,

그러나 요란하지 않으면서 묵직하고 바랜듯한 색감과 수준 높은 예술품들로 태국적인 스타일과 멋을 담고 있었다.

나중에 나 사는 집도 잘 가꿔서 박물관으로 만들어야지...


네, 제가 예전에는 그런 엄청난 포부를 가졌던 사람이에요, ㅋ

(지금은 정신 차렸습니다, 하)



어느 날 숙소로 돌아오면서 툭툭을 탔다.

내릴 때가 되니 탈 때 얘기했던 액수와 달랐던가,

여행 안내서에 나왔던 액수와 차이가 컸던가.

오, 바로 이것이 듣기만 하던 바가지요금이로군,

부당한 요구에는 절대 응할 수 없지!

나는 전의로 불타올라.

뭐 흔히 바가지를 썼다고 믿는 사람들이 보이는 언행- 따진다, 화낸다, 목청 높인다-을 했다.

그래도 기사와 합의가 안 되어서 숙소의 직원이 나서서 해결을 보았다.


이 경험은 내게 오랫동안 불쾌감을 남겼는데

이는 툭툭 기사의 과한 요구 때문이 아니라.

얼마 안 되는 액수 때문에 내가 화를 냈다는 사실과,

과연 내가 화난 이유가 타당했는가,

달리 행동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계속 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여행기를 읽다 보면 대다수의 여행자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알게 모르게 바가지의 대상이 된다.

달랑 몇 백 원 흥정한다고 반나절을 불쾌하게 보내기도 하고.

이 나라는 원래 물가가 비싸니까 당연한 듯 부유한 도시에서는,

도리어 가난한 나라 한 달치 지출액을 하룻밤에 써버리기도 한다.


세상 물정도, 세상살이의 어려움도 몰랐던 서른 즈음의 나와는 달리.

지금은 누구에게도 인생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바가지 문제는 단순히 그 상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따져 가다 보면 세계 경제의 불평등한 구조로,

근본적인 인간성 문제로도 연결되는 복잡한 사안이다.



바가지 액수가 사소한 금액이어서 내 기분 상하느니 에잇, 주어버릴 수도 있다.

내 손에 있는 몇 푼이 그 사람에게 가서는 훨씬 가치 있게 쓰일 수도 있겠고.

그러나 이 경우,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 양심적으로 행동하려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

동시에 양심적이고자 했던 사람마저 바가지꾼 대열에 밀어 넣을 수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곤란함이 남는다.


과연 정당한 가격이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힘들게 일해도 하루벌이가 하루의 생계조차 보장해줄 수 없다면,

그 액수는 정당했을까?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을 여행하면서 우리가 정말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일상적이어서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겪고,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바가지라는 불유쾌한 경험을 그저 흘려버리지 말고

그들의 삶,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찬찬히 알아보려는 태도를 가질 때,

우리는 여행이 주는 좋은 진정한 선물을 받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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