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홍콩 사람들의 거리

by 기차는 달려가고

한동안 홍콩에 자주 다녔다.

1960,70년 대 우리나라가 외부에 고립돼 있던 시절에,

홍콩은 우리에게 비밀스럽고 으스스한 이미지가 있었다.

이를테면 스파이라든가, 암흑가의 보스라거나, 밀수, 도망자 같은.

허름한 고층빌딩들과 그늘진 골목,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다니는 좁은 거리는 드러낼 수 없는 어두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홍콩 영화와 배우들은 한때 전성기를 누렸다.

액션 영화, 멜로 영화, 코믹 영화.

심금을 울렸던 그리운 배우들.

또한 홍콩은 국제금융시장과 중계무역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부유하고 호사스럽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부호들의 사치와 높은 택 가격은 자주 기사거리가 되었다.



내가 종종 여행했던 1990년 대에 홍콩은,

유려한 모양의 초고층 빌딩과 사치품들.

세계 각국의 음식점과 지구 위 어디로나 연결된 항공 노선으로,

최첨단을 달리는 세련되고 개방적인 국제도시였다.


홍콩에 가는 여행객들은 구룡반도의 끄트머리 침사추이와

그 건너편 현대식 초고층빌딩들이 늘어선 홍콩섬의 센트럴 지역을 주로 다닐 것이다.

시간이 더 있으면 리펄스베이나 스탠리 같은 관광지가 더해지겠지.



오밀조밀하고 빈틈없이 꽉 찬 작은 도시는 재미있었다.

첨단의 건축물과 낡아서 허물어질 것 같은 지난 시대의 녹슨 건물들이 어지럽게 늘어선 거리.

각양각색의 글씨체로 쓰인 빼곡한 간판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보이던 헐거운 창문들.

좁은 틈새에 건물을 지으면서 대나무로 비계를 올리는 남방의 건축 방식이 눈을 끌었다.


그때는 프랜차이즈가 지금처럼 압도적이지 않아서,

홍콩에는 개인들이 열성적으로 운영하는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제각각의 음식 냄새를 풍기면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던 부지런한 작은 식당들.

전차와 빨간 버스와 택시들과 사람들이 위태롭게 오가던 어지러운 도로를 지나고.

낡은 페리를 타고 반도와 섬을 건너는 짧은 시간의 출렁거리는 바다.

길 위 높다랗게 장대에 매달려 있던 빨래들.

내가 재미있어했던 홍콩의 풍경들이다.



한 번은 어머니와 홍콩을 가면서 구룡반도 침사추이에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 올라간 곳에 호텔을 정했다.

그 지역은 관광객들이 적은 홍콩인들의 동네였다.

어두워진 저녁에 큰길에 있던 호텔 뒤편으로 가봤더니 재래시장이 있었는데,

시장 한 구역에서는 새를 거래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나온 동네분들이 거리를 가득 메워서는.

새장을 들고 또는 새장 속의 여러 새들을 구경하며 시끌시끌.

전기불은 또 얼마나 환하던지.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정신이 번쩍 활력이 넘쳤다.


어머니와 딸은 골목을 오르내리며 기웃기웃 상점도 구경하고 오가는 사람들도 구경했다.

떠들썩하고 와글와글한 거리에는 어떤 명랑함이 흘러 다녔다.

별난 먹을거리들을 길에까지 풍성하게 쌓아놓은 가게 주인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길을 오가면서 주전부리 땅콩도 사고,

과자도 한 주머니 들고.

과일도 고르고.


그러다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좁은 탁자에 삐그덕거리는 의자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한자로 쓰인 메뉴판에서 모르는 음식 몇 가지 주문했는데,

신통하게 그 음식들이 다 맛있었다.

목이 늘어진 낡은 티셔츠를 입은 동네분들과 거의 붙어 앉아서,

식당 아주머니가 센 불에 후딱후딱 볶아주는 후루룩 국수를 먹고.

채소를 넣고 볶은 두부 음식에는 감탄을 했었지.

모녀는 두고두고 그 거리, 그 식당을 이야기했다.



참 재미있었어!

여행 취향이 잘 맞는 모녀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방콕의 툭툭